![]() |
고명재〈시인〉 |
"오래전 그는 그것에 자기만의 이름을 붙였다. 엄지 치기 이론. 어린 시절 어느 여름에, 할아버지 집 지붕 위에서 망치로 타일을 세게 내려치다 알아낸 사실이었다. 실수로 엄지를 내려쳤을 때, 이것 봐, 그렇게 세게 쳤는데도 많이 아프진 않은데……하고 생각되는 찰나의 순간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어―어리둥절한 채 다행이라고 느끼며 안도하는 착각의 순간이 지난 뒤―살을 짓이기는 진짜 아픔이 몰려왔다."(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엄지 치기 이론' 中)
왜 뒤늦게 알아채는 것들이 빛날까. 왜 세계의 진면목은 항상 늦게 드러나는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망치'가 있다. 나의 경우는 그가 과일 봉지를 들고 서 있던 모습. 그러니까 완전히 망가진 육체로, 깡마른 그가 나 준다고 과일을 들고 서 있던 모습이 가끔 엄지를 뭉개는 것이다.
봉지 속엔 배며 사과가 가득했었다. 몸이 바싹 말라버린 나의 사랑은, 가느다란 검지와 중지에 봉지를 걸고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건넸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자주 생각한다. 왜 그때, 나는 바로 짐을 받지 않았지? 1초라도 빨리 받았어야 했는데. 봉지 때문에 창백해진 손끝이 생각나서 가끔은 밥을 먹다가도 운다.
이렇게 사람의 죽음은 아프게 찾아오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고통은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세부 사항이 얼마나 귀하고 멋졌는지를 되살아나게 해 준다. 이를테면 그날 맡은 과일의 향기, 당신 손등에 일어서던 팽팽한 힘줄, 인자했던 눈매, 천천히 죽어가면서도 '자유로워지세요'라고 속삭이던 목소리. 그렇게 '늦게 오는 것'들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가장 '귀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 시처럼 뒤늦게 찾아오는 것. 바다를 건너서 간신히 오는 우편물처럼. 그렇게 우리는 늦게 받고 늦게 만난다. 당신 얼굴(眞面目)은 참말로 아름다웠었구나.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황인숙, '꿈')
이 시는 덤덤해서 속을 더 헤집어 놓는다. '늦게 오는 고통'마저 '자주 오는 것'임을 담담하게 승인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화자가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저 알아차리고 가만히 두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이 시는, 고통이 '회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 '가장 밝은 한때'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예전엔 슬픈 시가 많다는 게 참 신기했다. 왜 시인들은 늘 아프거나 슬픈 걸 쓸까. 하지만 사랑을 보내고 나서야 알 것 같다. 슬픔, 고통, 절망 속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늦게 오고 우리보다 앞서 빛난다.
왜 뒤늦게 알아채는 것들이 빛날까. 왜 세계의 진면목은 항상 늦게 드러나는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망치'가 있다. 나의 경우는 그가 과일 봉지를 들고 서 있던 모습. 그러니까 완전히 망가진 육체로, 깡마른 그가 나 준다고 과일을 들고 서 있던 모습이 가끔 엄지를 뭉개는 것이다.
봉지 속엔 배며 사과가 가득했었다. 몸이 바싹 말라버린 나의 사랑은, 가느다란 검지와 중지에 봉지를 걸고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건넸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자주 생각한다. 왜 그때, 나는 바로 짐을 받지 않았지? 1초라도 빨리 받았어야 했는데. 봉지 때문에 창백해진 손끝이 생각나서 가끔은 밥을 먹다가도 운다.
이렇게 사람의 죽음은 아프게 찾아오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고통은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세부 사항이 얼마나 귀하고 멋졌는지를 되살아나게 해 준다. 이를테면 그날 맡은 과일의 향기, 당신 손등에 일어서던 팽팽한 힘줄, 인자했던 눈매, 천천히 죽어가면서도 '자유로워지세요'라고 속삭이던 목소리. 그렇게 '늦게 오는 것'들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가장 '귀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 시처럼 뒤늦게 찾아오는 것. 바다를 건너서 간신히 오는 우편물처럼. 그렇게 우리는 늦게 받고 늦게 만난다. 당신 얼굴(眞面目)은 참말로 아름다웠었구나.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황인숙, '꿈')
이 시는 덤덤해서 속을 더 헤집어 놓는다. '늦게 오는 고통'마저 '자주 오는 것'임을 담담하게 승인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화자가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저 알아차리고 가만히 두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이 시는, 고통이 '회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 '가장 밝은 한때'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예전엔 슬픈 시가 많다는 게 참 신기했다. 왜 시인들은 늘 아프거나 슬픈 걸 쓸까. 하지만 사랑을 보내고 나서야 알 것 같다. 슬픔, 고통, 절망 속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늦게 오고 우리보다 앞서 빛난다.
고명재〈시인〉

고명재 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