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추(桐楸) 금요단상] 지리산 칠불사를 떠올리며… "기후변화 위기…자연 존중 '집단행동' 나서야 할 때"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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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2   |  발행일 2022-08-12 제33면   |  수정 2022-08-12 07:54
이익 위해 자연도 정복할 수 있다는 사고가 세계 지배
인구 절반이 폭염·폭우·폭풍·산불·홍수·가뭄으로 신음
모든 만물 소중하게 여겨야 대자연과 상생하며 공존

2009년 여름, 지리산 곳곳을 둘러보던 중 칠불사에도 들렀다. 칠불사 종각 아래 둑 비탈에 주변 짐승들을 위한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네모난 돌판 위에 과자와 과일 등이 놓여 있었다. 반가운 장면이라 사진을 찍어두었다.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을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이해했다. 인간과 자연 사이는 대립이 아닌 상생의 관계로, 자연을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본받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천인합일(天人合一), 무위(無爲), 연기(緣起) 등이 다 그런 사상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이러한 상호 의존적인 세계의 모습을 '인타라망'이라는 그물에 비유했다. 무궁무진한 상호 의존의 세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서구의 대표적 자연관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연도 정복할 수 있다는 사고가 중심을 이룬다. 지금은 이런 사고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칠불암
주변 짐승을 위해 차려놓은 음식상. 지리산 칠불사.(2009년 8월)

최근 지구촌 곳곳이 악의 기록적 폭염과 폭우, 산불 등으로 막심한 피해를 입으며 고통을 겪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알프스 빙하가 60년 만의 최대 기록인 하루 5㎝씩 녹아버리는 일이 일어나고, 그린란드 빙하는 기온이 15.6℃까지 오르면서 하루 평균 60t씩 녹아 없어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지난달 18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집단행동이나 집단자살"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페터스베르크 기후회담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인류의 절반이 홍수나 가뭄, 극단적인 폭풍, 산불의 위험지역에 살고 있다"며 "그런데도 우리는 화석연료 중독을 끊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에 직면했는데도 다자공동체로서 협력하지 못하고 있다"며 "각국은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기보다 다른 국가를 손가락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 변화에 실질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주요 7개국(G7)과 주요 20개국(G20)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지만, 얼마나 먹혀 들어갈지 의문이다.

불경에 초계(草繫) 비구와 아주(鵝珠) 비구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인도의 어느 비구(남자 승려)가 길에서 도적을 만나 옷가지와 갖고 있던 물건들을 다 빼앗겼다. 도적들은 풀줄기로 비구를 묶어 놓고는 도망가 버렸다. 발가벗긴 채로 숲속에서 풀줄기에 묶여 있던 비구는 행여나 풀줄기가 끊어져 풀들이 상할까 봐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밤의 추위와 한낮의 뜨거운 햇살은 물론, 독충이나 벌레에게 물려도 가만히 모든 고통을 참아냈다. 그때 마침 사냥을 나왔던 임금이 벌거숭이로 약한 풀줄기에 묶여 고통스럽게 꼼짝 않는 이상한 비구의 모습을 보고 비구를 풀어준 뒤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 임금은 크게 감동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 비구는 이때부터 풀에 묶인 스님이라는 의미의 '초계 비구'라 불리었다.

'아주 비구' 이야기는 이렇다. 한 비구가 보석을 가공하는 장인의 집에 탁발하러 갔다. 주인은 마침 임금의 부탁으로 붉은 보석을 갈고 있었는데, 스님이 오자 음식을 가지러 잠시 부엌에 들어갔다. 그때 거위 한 마리가 나타나서는 그 보석을 고기인 줄 알고 삼켜버렸다. 주인이 음식을 가지고 나와 보석 구슬이 없어진 것을 보고는, 비구를 의심하며 그에게 구슬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모른다고 말하자 그를 묶고 마구 때려 피가 흘렀지만, 거위의 생명을 지켜주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보석을 삼켰던 거위가 붉은 피를 먹으려고 기웃거리다가 주인이 홧김에 마구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죽어버렸다. 그때서야 비구는 사실대로 말하며 죽은 거위 배 속에서 그 구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참회했다. 이때부터 그 비구는 '아주(鵝珠) 비구'라고 불리었다.

계율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은 두 비구의 절박한 자세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집단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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