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우광훈의 장정일 傳] (12) 장정일 형과 함께 제천에 가다(상)

  •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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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2  |  수정 2022-09-02 07:42  |  발행일 2022-08-12 제15면
재즈카페 운영 꿈꾸며 장식용 영화포스터 즐겨 모아

[소설가 우광훈의 장정일 傳] (12) 장정일 형과 함께 제천에 가다(상)
2005년 '제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스윙걸즈'.

2005년 여름, 나는 장정일 형과 함께 '제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충북 제천으로 갔다.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2004년 작 '스윙걸즈'. 일본의 평범한 여고생들이 재즈란 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과정을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스크린에 담은 이 영화는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다.

아내가 오전에 약속이 있어 우린 낮 12시30분경에서야 비로소 대구를 출발할 수 있었다. 형은 나의 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판화가 이철수 선생님의 작품집을 아내에게 건넸다. 속지에 이철수 선생님의 친필 사인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KBS1 'TV, 책을 말하다' 진행 당시 선물 받은 것인 듯했다. 형은 그 작품집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했다며, 오늘 제천에 간 김에 그 작품을 구입할 것이라고 했다.(이철수 선생님의 작업실은 박달재로 유명한 제천시 백운면 평동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고속도로로 접어들 때쯤, 우리들의 화제는 카페이야기로 바뀌었다. 형은 아담한 크기의 재즈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자신의 꿈 중 하나라고 했고, 그때를 위해 실내장식용 소품으로 제격인 영화포스터를 즐겨 모은다고 했다. 더불어 카페를 차리면 가장 걱정되는 것이 가게 술을 자신이 다 마셔버리는 상황이라며, 카페 내 '자기 금주(禁酒)'에 관한 다양하고 유쾌한 상상들을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난 형이 〈J's bar〉와 같은 카페를 개업하게 된다면 그곳 한 귀퉁이에 조그마한 간이 책방을 내가 운영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영화제 개막작 '스윙걸즈' 관람前
팬 사인 요청 정중하게 거절한 형
타고난 수줍음 때문임을 잘 알아



군위휴게소에 도착한 우린 아내의 제안으로 떡볶이와 우동을 먹었다. 식사 후, 우린 벚나무가 우거진 야외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차에 올라타기 전 형은 공중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가 누군가와 잠시 통화를 했는데, 의성IC를 지날 때쯤 우리에게 그 내용을 들려주었다.

내용인 즉, 한 방송국에서 그 당시 핫이슈였던 미술교사 김인규씨의 대법원 일부유죄판결사건(아내와 함께 찍은 누드사진과 남녀 성기 사진 등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음란물 게재'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에 관한 형의 견해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형은 거절하였다고 했다. 이런 유의 사건에 관해 그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는 것은 결국 자기변명, 또는 자기합리화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형의 생각인 듯했다. 그 사건과 연관성이 없는 사람의 인터뷰는 객관성을 띨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그 모양새 역시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형은 이런 일만 생기면 꼭 언론사에서 연락이 온다며, 이번엔 KBS에서 메인 MC를 맡고 있어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린 다시 TV프로그램인 'MBC 음악캠프' 생방송 도중 발생한 인디펑크밴드의 성기노출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형은 이 해프닝 때문에 김인규씨 사건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우린 드디어 제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화제 장소인 TTC극장은 의외로 찾기 쉬웠다.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우린 극장에 딸린 토스트 가게로 들어가 토마토 주스와 키위 주스를 마셨다. 대구 문단에 관해 잠시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쯤, 누군가가 형을 알아보고 노트와 펜을 내밀며 사인을 요청했다. 형은 고개 숙이며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그것이 형의 거만함이 아니라 타고난 수줍음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스윙걸즈'. 영화는 쉽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구성이 다소 과장되고 만화적이어서 그런지 주인공들의 행위나 사건의 흐름 군데군데에 필연성이나 개연성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 피날레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야구치 시노부의 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영화는 스윙걸즈가 연주하는 'Moonlight Serenade'로 끝을 맺었고, 극장에서 빠져나온 우린 다음 행선지인 판화가 이철수 선생님의 자택이 있는 평동마을을 향해 곧장 출발했다.

-다음 주에 '하편'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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