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우울증이 축복이 되려면

  •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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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5   |  발행일 2022-08-15 제12면   |  수정 2022-08-15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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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까닭은 '그냥 사는 것'의 기쁨을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은 무언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길들이고 있다. 그냥 산다는 것은 에크하르트가 말했듯이 '살아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누군가가 생명에게 왜 사느냐고 천년이고 물어도, 만약 생명이 답을 할 수 있다면, 살기 때문에 산다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생명은 자기 자신의 근저로부터 살며 자기 자신의 샘으로부터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는 점에서 이유 없이 사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 자신의 근저로부터 활동하는 참된 인간에게 "당신은 왜 당신의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가 옳은 대답을 하려면, "나는 일하기 때문에 일한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우울증은 오히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삶,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수 있다. 이때 우울증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황혼의 미학'에서 '우울증은, 내가 우울증만 아니라면 그전처럼 계속 붙잡고 싶은 것들을 놓아버리게 만든다'고 하였다. 우울증은 현대 문명의 필연적인 결과다. 그리고 우울증을 겪으면서 우리는 현대 문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추구할 수 있다. 이현주 목사는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영성'에서 '자본주의의 잘못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자본주의를 겪지 않고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노예가 되지 않고 어떻게 노예 해방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현 인류가 처한 위기는 비록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우리는 그 고통을 통해서만 새로운 세계, 새로운 문명을 발견할 수 있다.

개별 에고의 시대가 열린 지난 150여 년간 인류가 경험한 것은 인간 자신이 결코 타당한 의미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밖에 있는 영원하고 궁극적인 진리를 버린 대가로 얻었다고 착각한 내 안의 영원하고 궁극적인 진리 역시 무지개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이 현대 문명이 목도하고 있는 '능동적 허무주의'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바꾸어 틱낫한 스님은 '네가 존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아잔 브라흐마도 '성난 물소 놓아주기'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은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진실은 정반대다. 당신은 존재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생각한다"고 하였다. 개별 에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이처럼 개별 에고의 존재에 매달린 현대인의 숙명이다.

예수가 공중을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를 말한 것은 인간이 '온생명'으로 거듭나면 다시 시간성을 극복한 영원한 현재를 살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부활과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말한 것 역시 죽지 않고도 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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