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잔나비 질타, 밴드가 숨 쉴 곳은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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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9   |  발행일 2022-08-19 제22면   |  수정 2022-08-19 06:54
연예인을 공인이라 부르며
만인의 모범이 될 것을 요구
도덕률서 일탈하는 록음악
농담조차 무례하다며 질타
한국 록밴드 숨 쉴 공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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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팝의 본고장 미국에선 어떤 사람이 화려한 스타 같을 때 '록스타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팝스타보다 록스타가 더 많이 쓰인다. 그만큼 록음악이 크게 발달했다는 이야기다. 팝의 정점이라고 일컬어지는 비틀스도 록밴드였고,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퀸'도 록밴드였다.

스타성뿐만 아니라 음악성면에서도 록음악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팝 히트곡을 좋아하던 사람도 음악을 진지하게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록음악을 선호하는 쪽으로 취향이 변화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록음악은 대중적인 팝보다 조금 더 수준 높은 음악으로 인식되어왔다. 뮤지션의 기본 형태가 밴드라고도 인식된다.

그런 배경에서 록과 밴드는 서구 팝음악계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매우 기이하게도 한국에서 록밴드는 그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위상이다. 한국은 미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한국 대중음악, 영화의 특징 중의 하나가 미국적 느낌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래서 한국 문화상품들이 세계적 호소력을 지니게 됐다. 인도나 중국의 작품들은 독자성이 강해서 다른 문화권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반면에 한국 작품엔 국제 보편 문화인 미국 문화의 특징이 있다 보니 이질감이 최소화됐고 한류가 보다 쉽게 국제화됐다.

그럴 정도로 미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 유독 록과 밴드만은 기를 펴지 못한 것이다. 70년대 청년문화 부흥과 더불어 잠시 그룹사운드가 인기를 끌었지만 대마초 파동 이후 철퇴를 맞았다. 80년대 후반 자유화 분위기 속에서 록밴드들이 잠시 활성화됐었지만 이내 잦아들었다. 그 후 우리나라 대중음악계 주류 무대에서 록음악은 거의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팝을 전방위적으로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 유독 록음악만은 열외인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음악적 감성과 록음악이 크게 어긋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의 감성엔 록의 직선보다 힙합 R&B의 곡선 느낌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그런 감성적 특징과 더불어 사회의 보수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연예인에게 아주 높은 수준의 도덕적 엄격성을 요구한다. 연예인을 공인이라 부르면서 만인의 모범이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조금이라도 무례함이나 일탈을 보이는 연예인은 질타의 대상으로 찍힌다. 대중과 언론은 언제라도 연예인의 무례를 발본색원할 태세를 갖추고 연예계를 감시한다. 이러다 보니 우리 연예계에서 태도 논란이 자주 터지는 것이다. 자세를 건방져 보이게 잡았다거나 말투가 건방지게 느껴지면 범죄를 저지른 것 이상으로 조리돌림을 당해야 한다.

록음악은 생래적으로 이런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 록은 사회 도덕률에서 일탈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 자체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거친 소리인데, 그런 거침이 록의 전반적인 태도를 규정한다. 밴드도 얌전한 모범생들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연예인의 이런 태도에 경기를 일으킨다.

최근 잔나비 비난 사태도 그렇다. 잔나비 최정훈이 록페스티벌의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위에 있는) 한 놈만 제치면 (우리가 넘버원이) 된다'는 식으로 호기롭게 농담했는데, 이게 우리 언론의 도덕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어떻게 그런 무례한 말을 할 수 있느나며 언론이 돌아가면서 질타했다. 미국 록밴드에 비하면 그냥 애교 수준인,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이런 말조차 검열과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록밴드가 숨 쉴 공간은 없을 것 같다. 록과 밴드가 삭제된 케이팝은 너무 허전하지 않을까.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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