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단편영화를 위한 포스터를 본 적이 있나요

  • 전가경 도서출판 사월의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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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5   |  발행일 2022-09-05 제25면   |  수정 2022-09-05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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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경 (도서출판 사월의눈 대표)

영화 포스터는 오래된 장르다. 동시에 당연한 장르다. 영화가 제작되면 포스터는 당연히 존재해야만 하는 그런 매체이다. 그런데 '영화 제작이 곧 포스터 제작'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독립 단편 영화다.

"저예산 단편 영화는 영화 포스터가 없어요." 어느 자리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저예산 단편 영화를 홍보할 때 사용하는 이미지란 '포스터'가 아닌 영화 장면으로서의 스틸컷이 대부분이었다. 프로그램 책자에서 이런 지면을 볼 때면 나는 이를 특별히 문제시하지 않았다. 홍보 마케팅이 애초 성립하기 애매한 독립 영화 신에선 포스터 자체가 불필요한 산물이 될 수 있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상 감독들 처지에선 사정이 달랐던 것 같다. 그들도 자신의 영화에 대한 '포스터'를 희망했다.

조금은 이색적인 영화 관련 전시가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이름하여 '디프앤포스터(diff n poster)'. 전시는 얼마 전 종료한 대구단편영화제(DIFF) 부대행사이다. 행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대구단편영화제는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에서 개최한다. 대구 독립영화 극장인 오오극장이 2015년 개관했을 때 문화 활동가 한상훈이 부대 행사로 '영화 포스터 리디자인' 전시를 제안했고, 이는 2018년에 디자이너 정재완, 현준혁, 구민호가 주축이 되어 꾸린 '디프앤포스터'의 전신이 된다. 시각디자인 기반의 이들 디자이너 셋은 전주국제영화제의 부대행사 '100 필름 100 포스터'라는 영화 포스터 디자인 행사의 포맷을 대구 독립영화제에 가져왔다. 매해 100명의 디자이너가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 100편을 선정하여 디자인했던 전주국제영화제 행사와 달리 '디프앤포스터'에서는 소규모 저예산으로 운영되는 만큼 그 규모가 훨씬 작다. 매해 30~40여 명의 디자이너가 영화 포스터를 디자인해 왔고, 올해로 5회째를 맞이했다. 그 사이 영화제는 끝났으나 전시가 진행 중이다. 두 가지 덕목을 읽어본다.

첫째, 저예산 독립영화를 위한 단 한 종의 영화 포스터가 생산된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다종다양하다. 기존 제도권 영화 포스터의 문법에서 완전히 이탈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만큼 영화 포스터는 디자이너의 해석 대상이다. 영화 제목이 지나치게 '표현주의적'이거나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포스터들은 '포스터'라는 이름을 잠시 빌렸을 뿐, 궁극엔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가 등 시각 기반 창작가 집단이 내놓는 주관적인 영화 해석이다. 감독은 이 행사를 통해 어쩌면 가장 적극적이라 할 수 있는 영화에 대한 '반응'이자 '리뷰'를 포스터라는 이름으로 선물 받는 것이다.

이 행사의 또 다른 덕목 하나 더. 지역 기반 창작자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한다. 다수의 많은 행사가 수도권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수도권에 있는 창작자들이 더욱 유리한 '가시권'에 있는 건 사실이다. 디프앤포스터는 이러한 관행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러 지역에 분포한 디자이너들을 초대한다. 서울은 중앙 혹은 수도권이 아닌, 여러 지역 중 하나이다. 프랑스의 어느 작은 도시도, 독일의 베를린도 대구나 광주와 다를 바 없는 지역이다.

이 행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 오오극장과 제로웨이스트샵 더커먼에선 디프앤포스터 전시가 9월30일까지 열린다. 행사의 취지에 공감한다면, 다가오는 추석 연휴, 이 두 장소로 향하길 적극적으로 권한다. 이 칼럼을 읽는 당신은 30분 이내의 단편영화를 위한 포스터를 본 적이 있는가? 그곳에 그 포스터들이 있다.

전가경 (도서출판 사월의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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