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나비와 가을

  •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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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3   |  발행일 2022-10-03 제12면   |  수정 2022-10-0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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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나는 우리 집 작은 꽃밭을 좋아한다. 그날도 습관처럼 눈뜨자마자 마당으로 나갔다. 꽃댕강과 세이지가 매혹적인 향기로 다가왔다. 이른 아침인데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잔디에 앉아 있었다. 한참 보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나비의 암수를 구별할 수 있다. 암컷이었다. 비닐장갑을 꼈다. 날개가 부서지지 않게 조심조심 그녀를 손바닥에 올렸다. 바람처럼 가벼웠다. 활짝 핀 나비바늘꽃 아래 그녀를 묻었다. 마침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감나무 잎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걱였다. 그녀의 영면을 기원하는 진혼곡 같았다.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서니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웠다. 나비의 죽음이 준 현기증이었다. 갑자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 떠올랐다. "땅에 내려앉는 작은 새 한 마리의 무게로 지구는 움직인다." 그래 저 나비가 지난여름과 나를 떠받치고 있었구나.

다빈치는 가장 미세한 것에서도 우주를 발견하는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다. 그의 노트는 난삽하기 그지없다. 얼핏 보면 전혀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낙서장 같다. 그는 메모할 때, 줄을 맞춰 쓰는 선형적 방식을 거부했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복잡하게 헝클어진 비선형적 방식으로 기록했다. 그는 무질서와 혼란, 혼돈(chaos)을 숙성하여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한(cosmos) 과학과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창조했다. 그는 섬세한 예술가의 감성과 예리한 과학자의 눈으로 자연을 탐구하고 관찰했다. 그는 대상의 내적 구조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파악하는 입체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감정 없이 만지려 하고, 미각의 취함 없이 먹으려 하고, 향기를 깨닫지 못하면서 숨을 쉰다"라며 감각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섬세한 감성과 오감, 치밀한 관찰과 사색으로 독창적인 것을 창조하는 크로스오버 형 천재였다.

건물 옥상에서 돌을 던지면 어디쯤 떨어질지 알 수 있다. 낙엽을 떨어뜨리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세상 많은 것들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평양 한복판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나비효과'란 아주 작고 미세한 변화가 자연현상이나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윤동주 시인처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고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끊어진 다리를 연결할 수 있고, 높다란 장벽을 허물 수 있다. 우리는 너무 크고 거창한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가장 작은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된다. 꽃밭을 노닐던 나비의 죽음으로 여름은 끝이 났고, 그녀의 마지막 날갯짓이 저 하늘을 더 높고, 깊고, 푸르게 만들었다. 가을은 그냥 오지 않았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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