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일본 오사카, 오감이 즐거운 식도락 도시, 밤이면 화려한 네온사인 낭만 더하네~

  •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 |
  • 입력 2023-02-17 09:21  |  수정 2023-11-24 08:42  |  발행일 2023-02-17 제36면

도톤보리1
오사카 도톤보리. 도톤보리강 주변에 형성된 유흥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 간사이공항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욱 붐볐다. 길게 늘어선 입국심사 줄 사이로 공항 직원의 육성 안내가 생경하다. 해외여행 세포를 일깨우는 낯선 감각이었다.

내게 오사카라는 도시는 '조총련'과 화려한 부자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아마도 1980년 개봉한 영화 '오사카의 외로운 별' 때문일 것 같다. 당시 화면에 담긴 오사카의 화려한 불빛은 내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실제 오사카는 한때 일본 제일이자 세계 6위의 상업 도시였으니, 내 기억이 영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오사카는 지금도 인구 275만명(2021년)으로, 도쿄에 이은 일본 제2의 도시이다. 일본 열도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의 우에마치(上町) 대지와 요도가와(淀川) 강의 삼각주에 형성된 도시이다. 삼각주 지대 주위의 작은 하천과 운하가 많다 보니 시 지역의 11.2%가 수역(水域)이다. 그래서 흔히 '물의 도시'로 불리고, 또 다리가 약 840개에 달하여 '다리의 도시'로도 불린다.

일본의 문화 여명기인 6세기 말 아스카시대부터 세토나이카이와 수도 아스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문화를 받아들이는 문호였다. 도시의 본격적인 성장은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을 구축하면서부터이다. 일본 전역의 통일에 나선 히데요시는 오사카성을 쌓고 성 외곽에 각지의 상공인을 불러 모아 광대한 도시를 건설했다. 히데요시 사후 두 차례에 걸친 오사카성 전투로 성과 주변 지역이 크게 파괴되기도 했지만, 에도 막부에 의해 곧바로 재건되었다. 이후 오사카성은 역사의 전환기마다 주요 사건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에도시대에 이미 에도(도쿄의 옛 명칭), 교토와 함께 '삼도(三都)'라 불리며 일본 3대 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메이지 시대에는 조폐국, 섬유산업, 금속공업 등이 발전하면서 도쿄를 앞지르고 '동양 제일의 상공업지대'가 되었다. 특히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도쿄에서 이주자들이 몰려들어 더욱 큰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일전쟁을 준비 중이던 일본이 1935년 전시체제로 전환하면서 중추 기능을 도쿄로 집결시켰고, 이에 따라 오사카는 상대적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파리 본떠 개발한 신시가지 '신세카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엔 최고의 유흥가
103m 타워 '쓰텐카쿠' 日 근대화 상징

2.6㎞ '텐진바시' 日 최장거리 상점가
상업도시의 면모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음식천국 '도톤보리' 간판보는 재미 쏠쏠

야경
오사카의 야경.

이처럼 오사카는 일본 근대화의 출발지였다. 나의 첫 일정도 일본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신세카이(新世界)의 쓰텐카쿠(通天閣)에서 시작했다. 신세카이 일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파리를 본떠서 개발한 신시가지였다. 주위로 수많은 상점과 음식점이 얽혀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오사카 최고의 유흥가였다. '하늘과 통하는 높은 건물'이라는 의미의 쓰텐카쿠는 1919년 아시아 최고 높이로 에펠탑을 본떠 만들어진 타워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건물이 소실되어 1956년에 재건했으며, 일본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도입한 건축물이다. 지금이야 다소 후줄근한 동네가 되었지만, 근대 시기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이 이곳이라 할 수 있다.

쓰텐카쿠는 피뢰침을 포함한 높이가 103m이다. 2층·3층에는 매점과 근육맨 박물관, 전시실, 4층과 5층에는 전망대가 있다. 레트로 감성을 살리려 한 걸까? 건물 내외부가 생각 이상으로 초라했다. 엘리베이터도 좁고 덜컹거렸다. 층마다 빼곡히 늘어놓은 각종 만화 캐릭터 그림이나 오래된 장난감에서는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치 어릴 적 문방구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낯설지 않은 장난감과 문구, 만화들이 늘 무엇이든 모자랐던 그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여 한참 동안 서성거리게 했다.

그런데 5층 전망대에 전시된 동상과 인형은 영 참기 힘들 정도로 낯설었다. 발바닥을 문지르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복(福)의 신 '빌리켄'이란다. 머리통이 불룩하고 찢어진 눈을 치켜세운 배불뚝이 모습이 섬뜩하면서도 기괴했다. 그런데 이 빌리켄이야말로 서양 문물의 도입과 일본인의 상업주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이 인형은 1908년 미국의 플로렌스 프레츠라는 예술가가 꿈에서 본 신비한 인물상을 모델로 만든 것이다. 1911년 오사카의 한 섬유회사가 빌리켄을 캐릭터로 만들어 상업적으로 활용하면서 일본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빌리켄은 이때부터 단순한 회사 캐릭터 이상의 인기를 누리며 '세계적 복신(福神)'으로 소개되었다. 집이나 가게에 빌리켄 인형도 모시는 등 지금은 오사카에서 인기 있는 행운의 신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을 흔히 '야오요로즈노카미(八百万神)', 즉 '800만의 신이 사는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많은 신을 모신다는 뜻이겠다. 여기에 또 하나의 신이 추가된 것이다.

다음 날의 첫 일정도 학문의 신을 모신 텐만구(天滿宮)이다. 일본 곳곳에 '텐만구'라는 이름의 신사가 많다. 텐만구라는 이름이 붙은 신사는 모두 학문의 신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眞)'를 모신다. 오사카 텐만구는 650년에 건립된 오래된 신사다. 지금 남아있는 본전 건물은 1843년에 지어진 것으로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날렵한 일본 사찰건축의 정수를 볼 수 있다.

이곳은 또 일본에서 가장 길다는 미나미모리마치(南森町)의 텐진바시(天神橋) 상점가로 이어진다. 텐만구에 참배객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가게들도 모이게 된 것이다. 일곱 구역으로 나누어진 텐진바시 상점가는 지하철 세 정거장 정도인 길이 2.6㎞에 걸쳐 있다. 유명 브랜드보다는 소박한 간사이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이 몰려 있어서 상업도시로서의 오사카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 오사카에서 시작한 것도 오사카의 상업도시로서의 성격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그 기업은 곤고구미(金剛組)이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는 1369년에 창업한 700여 년 역사의 이탈리아의 금세공회사 토리니 피렌체라고 하는데, 곤고구미는 578년에 창업하여 1천4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기업의 창업자가 백제 사람이었다. 쇼토쿠 태자의 초청으로 사찰건축을 위해 백제에서 건너온 장인 유중광(柳重光)이다. 쇼토쿠 태자는 오사카 중심가에 큰 사찰을 짓고자 했는데, 일본에는 기술자가 없었다. 결국 백제에서 네 명의 장인과 인부들이 건너오게 된 것이다.

2023020901000197000008003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유중광은 쇼토쿠 태자에게 직접 '곤고(金剛)'라는 성을 하사받고 곤고 시게미쓰(金剛重光)로 이름을 바꿔 일본에 정착하였다. 그는 이후 시텐노지(四天王寺)의 보수 관리를 맡으라는 태자의 명령에 따라 사찰의 건축 및 수리를 전담하는 회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진 나라의 호류지(法隆寺) 오층탑과 오사카성도 이 회사의 작품이다.

근래 이 기업이 유명해진 것은 1995년 고베 대지진 때였다. 당시 건물 16만 채가 파괴되었지만, 곤고구미가 지은 건물들은 별 손상 없이 견뎌내 큰 관심을 모았다. '곤고구미가 흔들리면 일본 열도가 흔들린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 곤고구미는 유중광 가문의 40세손까지 1천429년의 역사를 이어오다가 2006년 파산하고 말았다. 이후 다카마쓰 건설이 경영권을 인수하고 임직원 대부분을 승계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오사카가 상업도시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역할이 컸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지만, 오사카에서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당시 일왕이 있는 교토로 집중되어있던 경제력을 오사카로 모으고자 했다. 그는 전국의 유명 상인들을 오사카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모여든 상인들은 배가 드나드는 '센바(船場)' 지역에 집단 거주했다. 운하를 물류에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이곳의 지리적 조건 덕분에 상인들은 전국의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오사카에 어둠이 물들면 도톤보리(道頓堀) 지역이 빛난다. 다양하고 특이한 간판 네온사인이 불을 밝히기 때문이다. 도톤보리는 오사카 남쪽에 흐르는 도톤보리강 주변에 형성된 유흥가이다. 강을 따라 500m가량 이어져 있는 이곳은 오사카를 대표하는 각종 식당과 술집, 오락실, 극장 등이 가득하다. 도톤보리 입구에 있는 제과업체 글리코(Glico)의 거대한 마라토너 간판은 1935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오사카의 명물이다. 그 외에도 가니도라쿠 본점의 커다란 다리를 휘적거리는 대게, 복요리 전문점 즈보라야의 통통한 복어, 긴류 라멘의 가게 지붕을 휘감은 용 등 도톤보리의 간판을 보는 재미에 눈이 바쁘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타코야키의 원조 가게인 혼케오타코, 오코노미야키가 유명한 치보 등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잡화점인 돈키호테 도톤보리점 역시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이 건물 위에는 또 77m 높이의 대관람차가 설치되어 있어 밤의 낭만을 보탠다.

교토가 입다가 망한다는 옷의 도시라면, 오사카는 먹다가 죽는다는 미식의 도시이다. 칼과 불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전문요리사의 고급요리를 뜻하는 '갓포(割烹)요리'도 메이지 시대 오사카에서 탄생한 요리이다. 유부우동, 오므라이스, 오코노미야키, 타코야키 등도 모두 오사카가 원조이다. 일본의 수도가 교토였던 1천75년 동안에는 오사카항을 통해 모든 식자재들이 운반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천하의 부엌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음식이 개발되었던 것이다.

회전초밥이 처음 등장한 곳도 오사카이다. 공장지대인 동오사카에서 작은 스시집을 운영하던 시라이시 요시아키 사장이 맥주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를 보고 개발한 것이다. 그는 1958년 오사카의 겐로쿠 스시에 처음 이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선을 보였다. 1970년대 이 시스템이 크게 히트하면서 스시의 대중화와 세계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먹다가 죽는다는 '쿠이다오레(食い倒れ)'의 도시답다. <계속>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기자 이미지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