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슬산 가까이 살 수 있어 복이다

  • 신경용 금화복지재단 이사장 겸 한국문협 대구 달성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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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1  |  수정 2023-03-01 08:48  |  발행일 2023-03-01 제25면

[기고] 비슬산 가까이 살 수 있어 복이다
신경용 금화복지재단 이사장 겸 한국문협 대구 달성지부 회장

코끝에 닿는 바람에 따스함이 묻어나는 걸 보니 봄이 성큼 들어선 모양이다. 바람 냄새, 꽃향기, 새소리가 더 가까이 다가와 봄을 알리는 전령(傳令)이 된다. 사계절이 똑같은 콘크리트 도심에도 어김없이 봄의 기운이 느껴졌다. 꽃샘추위로 며칠을 매섭게 보냈어도 봄이 왔다고 콘크리트 숲을 뚫고 꿈틀한다. 비슬산 참꽃나무 잎이 굼틀대고 겨울날 동면하던 동물이 깨어나려고 어깨를 펴고 있는 듯 낙엽이 부스럭거리며 봄놀이를 준비하고 있다. 비슬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달성은 '아름답다'라고 표현해도 여전히 말로 다 부족한 것 같다.

비슬산(琵瑟山)은 거문고를 닮아 비슬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명칭 유래와 관련해선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째, '유가 비슬산'이라고 불리는 것은 주봉을 비롯한 산체 대부분이 달성군 유가읍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 자를 이름으로 삼은 비슬산은 인도 승려가 신라에 놀러 왔다가 이 산을 구경하던 중 비파 모양을 닮았다 하여 범어(梵語·예전 인도어)로 발음한 것을 그대로 표기했다는 설이 있다.

셋째, '유가사 창설 내력'이란 책과 신라 흥덕왕 원년인 병오년 5월 상한에 도성국사(道成國師)의 문인(門人)인 도의(道義)가 쓴 '유가사 사적(瑜伽寺寺蹟)'에는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 비슬산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넷째, 비슬산 정상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비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다섯째, 조선시대에는 비슬산의 한자가 '포(苞)'를 의미하기 때문에 '포산(苞山)'이라고 했고, 이 때문에 현풍(玄風)은 예전에 포산(苞山)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주장이다.

여섯째, 비슬산은 '닭벌(달구벌·달구는 닭의 경상도 사투리)' 주변에 우뚝 솟은 '볏(볏의 경상도 사투리는 비슬)'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일곱째, 달성군에서 1981년 편찬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에 보면 비슬산은 소슬산(所瑟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도의 범어로 부를 때 일컫는 말이며 중국말로는 포산이란 뜻이라고 기록돼 있다. 여덟째,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온통 물바다가 됐는데 비슬산만 높아서 남은 곳이 있었는데, 그때 남은 바위에 배를 매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이 바위의 형상이 비둘기처럼 생겨 '비들산'으로 불리다가 '비슬산'으로 불리게 됐다는 주장이다.

아홉째, 비슬산에 대한 전설 중에는 '사왕설(四王說)'도 있다. '비슬(琵瑟)'이라는 한자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뜻의 '비(比)'와 '필(必)'이 각각 '임금 왕(王)'자 4개를 떠받들고 있는 모습에서 연유된 것으로 4명의 왕이 배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슬산은 산림이 울창해 계절마다 색다른 아름다움을 보여 줘 대구경북의 명소가 되고, 민족의 얼을 전하는 산이 됐다. 봄에는 참꽃과 철쭉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울창한 계곡으로, 가을에는 멋진 억새 군락과 화려한 단풍으로, 겨울에는 얼음산과 눈꽃 축제로 사시사철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천혜의 자연자원과 선조의 지혜가 묻어나는 향토 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비슬산 가까이에 살 수 있어 복이다.

신경용(금화복지재단 이사장 겸 한국문협 대구 달성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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