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밥심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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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5 06:43  |  수정 2023-02-15 06:45  |  발행일 2023-02-15 제27면

'조선 백성은 대식가(大食家)다. 영국인의 평균 식사량을 크게 웃도는 것 같다. 대개 한 사람이 2~3인분 식사량을 족히 먹는다.' 영국의 여행작가 이사벨라 버드비숍(1831~1904)이 1890년대 조선을 둘러본 뒤 책에서 언급한 대목이다. 프랑스 선교사인 샤를르 달레(1829~1878)가 지은 '조선교회사'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조선 사람의 단점은 다름 아닌 폭식(暴食)이다. 밥을 먹을 때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말을 하면 그만큼 덜 먹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당시 이방인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다름 아닌 '조선인의 대식 습관'이었다. 배불리 먹지 못한 빈곤의 한(恨)이 컸으리라. 하지만 그보단 엄청난 노동량이 요구되는 벼농사를 매일, 온종일 해야 했기에 매끼 밥 한 공기와 나물 반찬으론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른바 '먹방'이 작금 대세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대식 습관'이 낳은 콘텐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쌀 소비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청 보고가 최근 있었다. 지난해 1인당 하루 155g으로 30년 전 대비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렇다고 식사량이 줄어든 건 아니다. 쌀이 육류에 식탁 주인공의 자리를 내준 것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게 옛말이 된 걸까. 우리네 인심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이른바 '밥 인사'가 애용되는 중이니까. "밥 드셨습니까"라고. "언제 밥 한 그릇 같이 합시다" "오늘은 제가 밥 쏘겠습니다"라는 말도 있다. 하나, 요즘 이 인사말이 월급쟁이 사이에선 부담스러워진다. 일부 식당 점심값이 1만원대로 올랐기에.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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