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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형 (음악학 박사) |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는 속옷 차림의 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앞에 있는 창에서 들어오는 빛은 회색 톤의 방 전체를 잔잔하게 비춰주지만, 등 뒤의 또 다른 창 너머로 짙은 어둠이 그녀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얼굴을 비추는 빛과 등을 마주하고 있는 어둠은 그녀의 불투명한 미래와 매이고 싶지 않은 과거를 연상하게 한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도시의 햇빛'이라는 그림의 내용이다. 그림 속 여자가 혼자라서 이토록 쓸쓸해 보이는 걸까.
호퍼의 또 다른 작품 '뉴욕의 방'에는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잘 차려입은 채 아파트 거실에 나란히 있다. 둘은 원형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떤 시선도 대화도 없이 자신만의 공간에 머물러 있다. 정장 차림의 남자는 소파에 앉아 등을 구부린 채 신문을 보고,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남자에게 등을 돌린 자세로 앉아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있다. 상체는 피아노에 닿아 있지만, 그녀의 몸은 남자 쪽을 향해 있어 그가 신문 읽기를 그만두고 함께 대화하기를 기다리는 듯 보인다. 피아노와 신문의 불협화음은 사각형이 아닌 원형(테이블)이 조율해 주면서 추상과 구체, 일상과 이상이 서로 스며들어 있다. 같이 따로, 따로 또 같이.
우디 앨런의 영화 '맨해튼'은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시작된다. 카메라는 뉴욕의 글래머러스한 빌딩들 사이로 걸어가는 세련된 사람들과 멋진 교복을 입고 즐겁게 하교하는 사립학교 학생들을 보여준다. 그러다 곧 건물 뒷면에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허름한 옷가지들과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외롭고 지친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도시가 비대해지고 화려해질수록, 그림자는 그만큼 커지고 짙어지게 마련.
미술과 영화의 두 작품에서 우리는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 감춰진 고독을 본다. 물론 고독의 양상은 각기 다르다. 앨런의 영화는 화려함에 감춰진 소극적인 감정으로서 외로움을 보여주는 데 반해 필자에게 호퍼의 그림은 쓸쓸하지만 외롭지 않고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다.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하여 개인주의적인 서구문화가 몸에 밴 탓일까, 아니면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고도(孤島)'에서 살아가는 삶에 그만 익숙해져서일까. 외로움이나 고독은 감정과 현상의 차이는 아닐까. 고독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이고 해방인 것이다.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은 말한다. "고독함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만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한다." 강퍅한 도시인의 마음과 삶에 문제도 있지만 우리는 빈방에 새어 들어오는 빛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고독은 도시 속의 자연일지도 모르겠다.
임진형 (음악학 박사)

임진형 음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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