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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
1673년 2월17일 극작가 몰리에르가 세상을 떠났다. '인간 혐오자' 등의 걸작을 남긴 그는 '영어의 셰익스피어' '독일어의 괴테' '이탈리아어의 단테' '에스파냐어의 세르반테스'처럼 '프랑스어의 몰리에르'로 추앙받는 대작가이다.
그가 프랑스에서 얼마나 위대한 문학가로 우러름을 받았는지는 루이 14세가 증언해 준다. 당시 프랑스에서 배우는 아주 천직이었던 까닭에 사망했을 때 장례식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몰리에르의 부인이 남편 장례식 허용을 요청하자 루이 14세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인간 혐오자'의 주인공 알세스트는 제목 그대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철저한 혐오감을 가진 인물이다. 물론 알세스트가 극단적으로 싫어한 것들은 아첨, 배신, 교활, 부당 행위 등 인류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배척되어 온 부정적 덕목들이었다. 특히 그는 위선에 가장 극단적으로 치를 떨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친구 팔랭트는 비판적 식견도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의 마음도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팔랭트가 알세스트에게 "완벽한 이성에 도달하려면 생각을 극단적으로 치우치게 해서는 안 되네"라고 충고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 팔랭트는 "옛날 미덕을 고집하며 완고하게 뻗대면 현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어. 사람들에게 완전무결을 요구하면 안 돼. 유연해져야지. 세상을 고칠 생각만 하고 관용을 베풀 줄 모르면 그건 그저 미쳐 날뛰는 광기에 불과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알세스트는 팔랭트가 아니라 20세 미모의 과부 셀리멘의 관심을 획득하는 데 목을 건다. 복잡한 남자관계로 뒤엉킨 셀리멘을 인간혐오 사상에 젖은 알세스트가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위선급 이율배반이지만 극 중 현실은 그렇게 전개된다. 본래 세상은 그렇게 '요지경'인 까닭이다.
문제는, 극이 끝날 때까지도 셀리멘이 아무 남자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의 진실한 사랑이 타락한 여성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알세스트의 교만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몰리에르는 극의 주제를 독자에게 넘겼다.
흔히 팔랭트를 사회성 풍부한 인물로 여긴다. 그러나 공자는 '원만'을 추구하는 유지를 "붉은색을 더럽히는 자색"으로 비판했다. 그런 인물형의 극치는 전광용의 1962년 발표작 '꺼삐딴 리'의 이인국이다. 공자는 전광용보다 약 2천500년쯤 전에 이미 '작은 이인국' 소리를 듣지 말라고 훈계했던 셈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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