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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슐츠(독일 프리랜서 기자) |
요즘 이태원 거리를 걸으면 이상스러울 만치 고요하다. 문을 닫은 가게가 즐비하고 '임대 중' 간판이 곳곳에 보인다. 랜드마크인 해밀톤 호텔을 지나면 메모지가 붙은 벽과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 시들어가는 꽃 몇 송이가 눈에 띈다. 이 거리에서 독일 TV에 생방송으로 전하던 것이 어제 일 같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예민한 곳을 건드리는 또 다른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서울에서 산 지 3개월 뒤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이 같은 불운은 발전 정도와 상관없이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난다고 믿었다. 하지만 몇 달 후 내가 저녁을 먹고 있었던 곳에서 몇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삼풍백화점이 붕괴했을 때 이것은 단지 불운이 아니라 체계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번개는 절대 같은 곳에 두 번 치지 않는다'는 영어 속담은 한국에서 무색했고 우리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음을 안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20주기를 맞았다. 참사 이후 어떤 것이 변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구로 향했다. 당시 딸을 잃은 이모씨 부부는 지하철 잿더미에서 찾은 딸의 마지막 유류품을 보여줬다. 금목걸이는 가볍고 부서질 듯했으나 손에 들자 갑자기 아주 무겁게 느껴졌다.
"묻고 싶은 건 그때 이후 무엇이 변하긴 했는가예요." 어머니가 던진 질문이다.
최근 이태원 참사를 보면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참사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사건의 근본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으며 이와 같은 재난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참사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언뜻 보기에는 모두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무엇이 다리, 백화점, 선박, 지하철, 좁은 거리에서의 대중 파티에서 일어난 사건을 잇는단 말인가. 결국에는 '주의 태만'과 '탐욕'이라고 생각한다.
지하철 좌석과 공사 콘크리트에 값싼 자재를 사용하는 욕심, 무리한 과적으로 사나운 날씨에 결국 배를 침몰하게 만든 욕심 그리고 규칙과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더 철저히 감수하고 이러한 위험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국가의 의무 태만이다.
독일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보안과 안전이 얼마나 가볍게 여겨지는지는 언제나 놀랍다. 신호등의 빨간불은 멈추라는 '명령'이기보다는 '제안'에 가깝고, 배달기사 대부분은 제대로 된 헬멧을 착용하고 있지 않다. 범칙금이 낮고 경찰은 특별 단속기간이 아닌 이상 눈감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두들 법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한국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책임이 전혀 없는가. 스스로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정부에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순진하게 보인다. 법규를 준수하지 않고 탐욕이 안전문제 또는 이치를 덮는다면, 스스로에게 '오직 정부만이 책임이 있는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사건이 일어났던 대구 중앙로역 기억공간에 섰다. 2015년에 만들어진 이 공간은 유가족이 사고 이후 12년간 노력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독일은 베를린 가장 중요한 공간에서 독일의 어두운 역사인 제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고 있다. 많은 독일인이 그곳을 찾아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드는 공간이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이 공간을 돌아보며 그날의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또다시 실수가 나오지 않도록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안톤 슐츠〈독일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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