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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국회의원 (국민의힘) |
"빌딩 숲 사이 소리 없는 비명", 도시 한구석에서 외로이 죽음을 맞는 청년들에 관한 표현이다. 최근 2030 청년층의 고독사가 늘고 있다는 소식에 이 표현이 떠올랐다. 1인 가구의 증가와 취업난 등이 겹친 탓이라고 한다. 1년여 전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홀로 숨진 31세 청년도 그런 경우다. 나흘 만에 발견된 그의 주검 곁에는 소주병과 함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160장이나 쌓여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도 그의 소리 없는 비명을 듣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비극이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내 이웃이나 가족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안타까운 마음에 지난해 8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의원이 되고서 가장 먼저 제출한 제1호 법안이다. 서울시와 자치구에서 10여 년 일하면서 절감했던 법 제도와 현장 사이의 괴리를 메워 보고자 했다. 여기에는 방배동 모자 사건 때 느꼈던 무거운 책임감이 담겨 있기도 하다.
2020년 12월 지적 장애가 있는 30대 아들이 60대 엄마의 죽음을 방치한 채 노숙 생활을 하다가 7개월 만에 구조됐다. 놀라고 송구한 마음으로 사건을 들여다보니 복지제도의 허점에서 비극이 초래됐음을 알 수 있었다. 남편과 이혼한 고인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문서상으로는 부양 의무가 있는 가족이 존재해 생계급여 등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존 법안에 비해 개정안은 고독사 위험군을 미리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예방조치를 취하는 데 중점을 뒀다. 고독사 징후를 잡아낼 수 있는 각종 데이터를 통합 관리해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구청장 시절 1인 가구 지원센터를 만들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혼자 사는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이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걸 알고 있어서 간병 돌봄 '건강119' 서비스나 관계망 형성을 위한 동아리 모임 등을 참고삼았다.
법안은 현재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 계류 중으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법안 276건 중 219건이 국회에서 멈춰 있는 상황이다. 어서 통과돼 고립과 단절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독사는 모든 것이 개인화·파편화한 포스트모던 시대의 그늘을 보여주는 상징적 단어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일부 노년층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과제다. 지난해 주민등록상 1인 가구가 1천만명에 육박하고, 1~2인 가구가 전체의 65.2%를 차지하는 현실에 비춰보면 이제 고독사는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할 수만은 없게 됐다. 영국에서는 2018년 '고독부'를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두 나라 모두 고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의료·경제 등에도 부담을 주는 사회문제로 본 것이다. 우리도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고독사는 그가 얼마나 외롭게 죽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외롭게 살았는지를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경제 위기가 깊어지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이 눈물을 훔치고 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소리 없는 비명을 듣기 위해 오늘도 귀를 열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것은 국민 삶에 도움이 되는 플러스 정치를 하겠다는 나의 초심을 재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조은희 국회의원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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