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행복한 삶에 대해

  • 구영웅 현대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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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8  |  수정 2023-02-28 07:23  |  발행일 2023-02-28 제14면

[문화산책] 행복한 삶에 대해
구영웅〈현대미술가〉

최근 심리학자들의 강연을 들으면 한국인의 특성을 '집단주의'가 아닌 '관계주의'로 설명한다. 관계주의는 항상 다른 사람의 취향이나 선택에 따라 의견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는 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갈 때 상대의 의견에 따라 메뉴를 바꾸는 행위가 대표적인 관계주의적 행동이다. 우리는 이것을 배려로 생각한다. 그래서 줄을 서 있을 때에도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양보는 순서대로 진행된다는 원칙을 깨는 것이다.

관계주의에 바탕을 둔 우리는 자신의 기준보다 남의 기준에 맞추기에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관계주의적 문화에서는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개성이 형성되기도, 또 존중받기도 힘들 수 있다. 그래서인지 관계주의적 문화에서는 남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쉽게 드러낼 수도 없다.

나는 살면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이 행복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삶의 최종 가치이자 목적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지 않아도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행복을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삶을 불행으로 이끌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행복은 칭송받는 삶으로 귀결된다. 평생의 업적이나 초인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관념적이며 나아가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의 가치를 무시하게 된다. 이렇게 칭송받는 삶만을 추구한다면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을 위해 투자하는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오늘날 심리학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행복을 삶의 목적이 아닌 도구라고 이야기한다. 즉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려면 행복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행복의 기준이 인생 전체에서 일상으로 옮겨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중요해진 것이다.

또한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횟수가 중요하다고 한다. 유명한 스타들이 자살하는 경우 행복한 경험을 못 해서가 아니라, 너무 큰 행복 이후의 상대적 박탈감을 견디지 못해서라고 한다.

종합해 보면 우리가 좀 더 자주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것들까지도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생각이 아니다. 감정적인 경험이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경험을 해석할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해석하고 느끼는 것에서 행복한 경험이 시작된다.

과거에 나는 행복을 대단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연금술처럼 상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내 생각을 글로 세상에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고민하고 글을 고치는 시간을 보낸 지난 두 달의 일상이 아주 행복했다.

그리고 이 행복이 새로운 창작물로 연결되리라 확신한다.구영웅〈현대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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