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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
예부터 전해오는 대구아리랑을 보존하고 전승하며 아리랑 홍보대사를 스스로 도맡은 한 여자가 있다. 국악계에선 '아리랑과 결혼한 여자'로 통한다.
"나는 우리 민요와 아리랑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녀가 신문 인터뷰를 통해 전달한 이야기다.
그녀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로, 18세에 최종민 국악 선생의 권유로, 1976년부터 경기민요 명창 이창배 선생에게 경도·서도잡가와 이론을, 안비취 선생에게는 경기 잡가를 배웠다. 1982년 KBS민요백일장 장원, 1985년 한라문화제 최우수상, 2002년 상주 전국 민요 경창대회 명창부 대통령상, 2004년 문화체육관광부 표창장을 받은 바 있다. 경상도 사람으로서 경상도 민요를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대구로 내려와 영남지역의 토속민요 채록과 전승하는 것에 일평생을 바쳤다. 2003년 창작 '대구아리랑'을 만들어 음반에 취입하고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회장, 전국 아리랑 전승자협의회 회장, 대구아리랑 보존회장으로서 20년간 대구아리랑 경창대회 및 축제를 개최해 아리랑 보존과 전승에 힘을 기울였다.
그런 그녀는 올해도 어김없이 대구아리랑 경창대회를 기획하며 연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수필을 쓰고 있던 찰나 지난 1월5일 갑작스레 지병으로 세상에 이별을 고했다. 그녀가 나에게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다시금 열어봤다.
"아리랑 경사가 났어요." "올해 유네스코 등재 십 주년입니다." "단희씨 새해는 더욱 건강하시고 왕성한 활동하기를 바라요." "어느 한때 섬유로 부강했던 대구의 옛 추억을 시민들이 회상할 수 있도록 대구아리랑을 한껏 홍보합시다." 그녀에게 아리랑은 가족, 친구이자 삶 그 자체였다.
"낙동강 기나긴 줄 모르는 님아. 정나미 거둘랴고 가실라요. 아롱아롱 아롱아롱 아라리야." 그녀가 전승해 온 1936년 최계란 명창의 대구아리랑 노랫말이다. 매년 한 무대에서 함께 불렀던 아리랑, 그녀가 가는 마지막 길, 추모식에서 한 제자의 선창으로 시작해 다 함께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울려 퍼진 그 순간, 내 어깨에 대구아리랑의 전승, 보존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얹혔다. 어쩌면 스스로 앉힌 걸지도 모른다. 나 또한 대구, 영남 출신의 민요 전공자이기에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정은하 선생님, 대구아리랑 잘 보존하고 전승하겠습니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김단희 국악인·서도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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