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대구에는 왜 스탠퍼드가 없을까?

  • 권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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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5 06:52  |  수정 2023-05-05 06:54  |  발행일 2023-05-05 제22면
야심찬 청년들의 모험심이
실리콘밸리 탄생시켰듯이
인재기근 수도권 탓하기전
지역 최상의 인재 집단인
교수들의 도전정신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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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업 객원논설위원

대구시는 유망 스타트업 육성과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배출을 위해 행정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벤처 캐피털의 투자액과 동일한 1대 1 매칭투자를 해주는 싱가포르에는 못 미치지만, 민선 7기 때 이미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으며, 글로벌 스타트업들의 "미다스의 손" Plug&Play 대구지사를 개소하고, 삼성전자 "C-Lab Outside"도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현한 국내 34개의 유니콘 기업 중 32개(94%)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아직 대구에는 단 한 개도 없다. 비수도권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창업보육센터가 12개나 있고, 요즘 세계시장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알고케어, 뷰노, 라메디텍 같은 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들의 실증기반인 의료생태계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수준인데 답답한 노릇이다.

지난 3월 산업연구원(KIET)은 연구보고서에서 "비수도권에서 유니콘을 배출하려면 지역기반 벤처투자 확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벤처 캐피털 지역유치와 실제투자는 다르다는 점이다. 아무리 투자자들을 모셔 와도 투자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을 찾지 못하면 실제투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 나스닥(NASDAQ) 상장기업 수 세계 3위 요즈마 펀드의 이갈 에를리히 회장이 방문했을 때 직접 의료 관련 스타트업만을 엄선하여 투자제안을 들었지만 실제 투자를 했다는 말은 들은 적 없다. 대구시가 행정역량을 총동원해도 결국 투자자들의 금고를 여는 열쇠는 스타트업 본인들이다. 세계 최고의 첨단 혁신제품 전시회인 CES 2023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주>지크립토는 한양대 교수 두 명이 창업한 블록체인 사이버 보안 관련 스타트업이며, <주>마이크로시스템은 명지대 내 기술지주회사로 지능형 영상감지 시스템 개발로 각각 세계 유일의 기술력을 선보였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이들 대학 발 스타트업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해묵은 고민이 떠오른다. 대구는 무엇이 필요한가.

실리콘밸리에는 "대학 졸업장을 땄다면 당신은 이미 벤처 기업가로서는 실패자"라는 이상한 전통이 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해 래리 앨리슨 오러클 창업자 등 빅테크 창업자 중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중퇴하고 불 속을 겁없이 뛰어든 불나방들이 유독 많은 탓이다. 그 결과가 인류의 삶을 바꾼 기술들, 진공관, 반도체, 퍼스널 컴퓨터, 인터넷, SNS 등을 쏟아낸 것이다. 이러한 패기 넘치는 도전정신의 배경에는 서부개척의 한 획을 그었던 "골드러시"가 있다. 1849년 한해 약 8만명에 이르는 모험심에 가득 찬 청년들을 금이 발견된 새크라멘토강 유역으로 끌어들였고 1853년에는 그 수가 25만명을 넘었다. 투기꾼들과 온갖 부랑자들이 몰려들어 조용한 농촌이던 캘리포니아는 문자 그대로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탕하든지 망하든지(California or Bust)" 둘 중 하나였지만 두려움이 모험심을 꺾을 수 없었다. 위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망한 자들보다는 소수의 성공한 자들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야심 찬 청년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험심은 실리콘밸리 벤처기업가들의 도전정신의 모태가 되었다. 황량한 산타클라라 계곡에 스탠퍼드대학가 교수들이 앞장서고 도전적인 제자들이 뛰어 실리콘밸리를 탄생시켰듯이 인재 기근에 수도권 집중을 탓하기 전에 대학교에 상주하는 지역 최상의 인재집단인 교수들이 움직여야 한다. 투자는 사람을 따라오는 법이다. 교수들의 도전정신을 기대한다.

권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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