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어록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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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19 07:12  |  수정 2023-06-19 07:12  |  발행일 2023-06-19 제27면

고금에 걸쳐 지도자들의 어록(語錄)은 국민 뇌리에 깊이 각인돼 왔다. 간명한 한 줄의 힘 때문이다. 공감과 위안을 주는 어록일수록 오래도록 회자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특유의 떠는 목소리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해방 이후 좌·우익 대립 속에서 국민의 단합을 호소한 정치적 레토릭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1969년 새해 휘호인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도 인상 깊다. 조국 근대화의 절박함을 설파한 한 줄 어록이다. 강렬한 걸로 치면 김영삼 대통령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가 일번 아닐까. 1979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하며 한 말이다. '모가지'라는 표현에서 읽히듯 비장함이 물씬 배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0년 내란 음모 재판 최후진술에서 "훗날 민주주의가 회복되겠지만 결코 정치 보복은 안 된다"고 했다. 이른바 'DJ 정신'으로 일컬어지는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다.

논란의 어록도 적지 않다. 전두환 대통령은 1995년 내란 혐의 재판에서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해 비난을 들었다. 발언 당시엔 히트쳤지만 훗날 도마 위에 오른 노태우 대통령의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도 잊히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명언인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도 퇴임후 따가운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치러진 중국 대학 입학시험 문제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어록이 등장했다.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내용의 어록('남의 길을 막아도 더 멀리 갈 수 없다' '세상에 꽃이 하나뿐이라면 단조롭다')이다. 종신 집권을 꿈꾸는 시진핑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도를 넘은 듯하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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