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의 정변잡설] 킬러문항과 朝三暮四

  • 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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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8 06:53  |  수정 2023-06-28 06:54  |  발행일 2023-06-28 제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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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결과가 같은데도 불구하고 당장 겪는 불편만 없어지면 문제가 해결된 것이라는 궤변을 들어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하고 당장 그 실례를 들어보라고 하면 대학입시라고 답합니다. 예비고사-본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 선지원 후시험, 입학사정관제,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 논술시험 등등 내가 학생과 학부모로서 겪은 대입 관련 용어만 해도 혼란스러워요. 수험생을 평가하는 방법이 저렇게 다채롭게 변해왔지만 공교육은 더 초라해지고 학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사교육비 부담은 늘기만 했지요. 오늘도 밤 10시에 학원에서 귀가하는 학생들로 범어네거리와 만촌네거리를 잇는 그 넓은 달구벌대로가 막힐 것입니다. 그 행렬 중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이 이상한 짓을 왜 하고 있는지 정말 자괴감이 듭니다. 학원수업뿐만 아니지요. 교사도 잘 모르는, 학원의 컨설팅을 받아야 겨우 더듬을 정도로 입시가 복잡해졌고 학생부 기재사항, 면접시험 보는 방법, 자기소개서 작성까지 거액을 주고 사교육에서 배워야 할 지경입니다.

사교육의 비대는 그것을 감당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윤택해진 탓도 있지만, 학원 뺑뺑이에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아이의 고통과 부모의 부담은 학벌이 주는 편익을 위해서 응당 감수해야 하는 반면 그 투자로 얻은 졸업장으로 아이가 평생 마른 땅만 딛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창장 위조는 물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아이를 명문대학과 의치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도그마, 이게 먹고 살 만한 학부모의 태도라면 살림이 빠듯한 부모의 속내는 또 다르지요. 속칭 투잡을 뛰더라도 학원비는 마련해야 하고 공교육만으로는 신입생을 다 채우지 못하는 대학밖에 갈 곳이 없다는 강박관념, 족집게 고액과외는 못 해도 동네학원이라도 보내야 부모 노릇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고졸의 일자리는 너무나 척박해요. 그나마 있는 자리도 대학졸업생으로 채워지고 고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접이라고 할 것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그들이 소수가 되어버린 지금 그 소외감을 보듬고 무의미한 진학자를 고졸 진영으로 끌어들일 정책이 절실합니다. 아이가 대학을 가지 않아도 맡을 수 있는 역할을 우리가 마련하지 않는다면, 고졸이라도 좋은 일자리와 같은 국민으로 환대받는다는 정책을 학부모와 학생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입시제도를 백날 바꾸어도, 킬러문항을 넣든 빼든 밤 10시에 찾아오는 교통체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졸생태계를 복원하는 노력 없이, 입시제도와 평가방법만을 바꿔서 교육문제를 해결한다는 주장, 국민을 원숭이 취급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당국의 입시제도 개선책은 없는 집에 빈손으로 오는 손님처럼 반갑지 않습니다.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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