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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
나는 왼쪽 조명 밑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예쁘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꼭 그 자리에 앉는다. 오래된 습관이다. 조명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참 다르게 보인다. 똑같은 것이 이렇게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마음 씀씀이에 따라 변하는 우리의 감정처럼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래서 나만 알고 잘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 말, 세계에서 가장 야간조명이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에 서울이 꼽혔다. 신기한 것이, 그때에는 야간 경관 조명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없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가 꼽혔을까? 모두가 야근을 해서 빌딩의 창문 사이로 나오는 빛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것이다. 당시에는 형광등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그 광원이 흰색 베이스의 주백색, 태양광의 주광색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며 도시 공간을 가득 채웠다. 특히, 건축물의 외관에 비춘 인위적인 경관 조명보다 공간 속에서 볼륨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은 한층 더 풍요로웠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도시조명의 시작은 언제일까.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파리의 일정 구역을 지정하고 도로에 면한 창에 밤새도록 등불을 켜 두면서, 조명은 도시공간의 쾌적성과 상징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루이 14세의 치세는 '빛나는 시대'로 불렸고, 파리는 '빛나는 파리'로 유럽 전역에 알려지며 유럽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불빛이 밝혀져 있는 도시를 즐겨왔다.
사실상 서울의 경관 조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계기는 2002년 월드컵 때이다. 밤이 밝아지고 24시간 살아 움직이는 가성비가 좋은 도시가 된 것이다. 단순히 휴식의 시간이었던 밤이 자유를 만끽하는 새로운 개념의 시간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야경(夜景, nightscape)은 도시의 공간이 가진 이야기와 특색 있는 지역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 둘 수 있는 새로운 광원의 보름달이 된 것이다.
곧 추석이다. 낮보다 밤이 더 밝아진 요즘, 우리가 기억하는 달은 어떤 모습일까? 푸근한 보름달, 잠 오는 눈썹달, 볼 때마다 달라서 참 좋긴 하다. 눈썹달도 마음으로 보면 원처럼 보인다. 강한 빛을 발산하는 도시의 조명은 우리에게 또 다른 밝은 밤을 선사하고, 잊힌 광원인 달빛은 은은한 분위기를 만든다. 보름달을 보며 저 멀리 옥토끼에게 바람을 전한다. 우리는 어둠을 어둠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보름달을 다시 가슴에 담고 싶다고. 김소희<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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