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 역할을 맡아 1979년 12월12일 밤의 일촉즉발의 상황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관객을 가장 많이 모은 영화는 마동석·이준혁 주연의 '범죄도시3'이다. 유일하게 올해 천만관객을 모은 이 영화는 지난 5월31일 개봉해 1천6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코로나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던 영화관이 오랜만에 사람으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여준 '범죄도시3'은 관람객 평점 7.72를 얻어 대중적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작품성까지 챙겼는지는 의문이 남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이 올해 또 한번 천만관객을 동원할지 관심을 모은다. '서울의 봄'은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무섭게 스코어를 경신했다. 이는 '범죄도시3'과 비슷한 수준이다. 예매율에서도 지난달 28일 기준 51.5%를 차지하면서 2위인 '싱글 인 서울'의 12.5%에 비해 4배가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관람객 평점에서도 9.57을 기록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잡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영화는 1979년 12월12일 밤 서울 국방부와 청와대 등에서 일어난 일촉즉발의 9시간을 밀도감 있게 구성했다. 그날 밤 반란을 주도한 군부세력들이 어떻게 권력을 움켜쥐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올라탔는지를 사실적 근거와 영화적 상상력을 담아 재구성했다. '비트' '태양은 없다' '아수라'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황정민·정우성·이성민·박해준·김성균 등 개성파 연기자들이 가세했다.
그동안 가려져 있던 12월12일 밤의 민낯이 처음으로,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영화가 몰고 오는 정치적, 사회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는 '서울의 봄 챌린지'까지 나오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화가 나기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 심박수와 스트레스 지수를 스마트 워치로 측정해 소셜 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는 형식이다.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에서는 책임공방을 벌이는 등 논쟁이 꼬리를 물고 확산하는 분위기다.
정우성은 이번 영화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할을 맡아 자신의 인생 캐릭터를 새로 썼다. 그는 진정한 군인의 자세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는 한 인물을 집요함과 치열함으로 연기했다. 극중 '전두광'으로 분한 황정민이 과격하고 빠른 템포의 연기를 보여줬다면 대척점에 있는 정우성은 가지런하고, 느린 속도감의 모습을 보여줬다. 극중 이태신은 장태완 장군의 모습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캐릭터다. 장 장군은 12·12사태 때 반란군 세력에 맞서 저항한 인물로 현재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영화를 첫 관람한 소감은.
"기자 시사회를 통해서 영화를 처음 관람했어요. 뭐랄까. 기가 빨렸다고 할까요. 김성수 감독님은 작품마다 치열함과 집요함으로 멋진 작품을 보여주시는데, 이번에도 굉장히 디테일한 작품을 완성한 듯해요. 그런 치열함이 영화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분명하지만 배우들에게는 극강의 스트레스를 몰아주기도 하는데요. 예전에 '아수라'를 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되뇌며 작업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감독님과 함께 작업을 한다면 또 반갑게 할 것 같습니다."(웃음)
▶김성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태신이란 인물에 정우성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하는데 본인도 그렇게 느끼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닮았다고 느끼는지 궁금하다.
"전혀 안 닮았어요.(웃음) 감독님이 제가 UN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뉴스 인터뷰한 영상을 보여주며 '이게 이태신이야, 이태신이 이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셨는데, 저는 내심 '무슨 말씀하시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인터뷰에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신중한 자세를 캐릭터에 녹여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집요하고 치밀한 김성수 감독
극강의 스트레스 몰아주지만
작품 제안은 언제나 반가워
황정민 배우 '아우라'엔 기 빨려
대립구도 한발 거리 둔 채 표현
▶이태신이라는 캐릭터가 정의로운 역할이어서 인상깊었던 듯하다.
"이번 역할을 연기하면서 정의롭다, 아니다로 접근하지 않았어요. 김성수 감독님은 '아수라' 때부터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하고, 인간본성을 다루려 하신 듯해요. 우리 안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의 모습을 담는 것이죠. 이번 작업을 하면서도 정의로움, 또는 선과 악의 대결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를 응원하는지 바람은 있겠지만, 그걸 강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이태신을 연기하면서 '정의의 화신'을 의식했다면, 이태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이태신'과 대척점에 있는 '전두광'은 불 같은 성격의 캐릭터다. 이태신을 연기할 때 어떤 감정으로 임했나.
"극중에서 '전두광'은 감정의 폭주를 하는 인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태신' 역할은 좀 더 이성적이려고 했습니다. 전두광과 맞붙는 신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전두광의 연기를 눈 앞에서 볼 기회는 별로 없었지요. 일부러 전두광 패거리들이 촬영하는 신에 가서 많이 봤습니다. 어떤 작품보다 상대의 연기를 많이 관찰한 것 같아요. '저렇게 연기를 하니까 내가 이렇게 연기를 해야지'라는 전략적인 계산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전두광이 어떻게 표현하는지 막연히 궁금했고, 전두광을 내 눈앞에 품고 멀리 거리를 두고 전화 선 너머의 대립을 내 속에 품고 대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황정민의 파격변신을 비롯해 함께 작업한 동료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정민형은 분장을 넘어서는 캐릭터가 뿜어져 나왔어요. '이걸 어떻게 감당하지?'라고 지켜보면서 부럽기도 했어요. 이태신도 흰머리를 붙이고 칠하고 했지만 그에 비할 바 아니었죠. 그리고 이성민 형과 이번에 처음 작업을 했는데, 그는 나를 구름 위에 얹혀놓고 띄워주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지니TV의 새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로 11년 만에 멜로 드라마를 작업했다.
"손으로 말하는 화가 차은우 역할을 맡아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과 사랑을 펼쳐갑니다. 낯선 설정에 이끌려 13년 전에 작품의 판권을 구입했습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남성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나오는데, 심장을 두드리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과감하게 판권을 구입했지만 당시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만들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장애를 가진 인물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이나 자막사용 등에서 여의치 않다고 느꼈거든요. 그렇게 잠시 인연이 끊어졌지만, 우연히 다시 제 앞에 나타나 이번에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무려 11년 만에 멜로 연기에 도전했는데 두려움은 없었나.
"멜로는 모든 배우들이 하고 싶은 장르에요. 모두가 좋은 시나리오를 찾고 있을 것이에요. 저 같은 경우 영화 쪽 작업을 위주로 했는데, 그동안 영화계에서는 멜로가 선호되지 않았고, 그사이 드라마를 통해 훌륭한 멜로 작품이 많아지며 시청자들의 욕구를 채워드리고 있던 것 같아요. 저도 11년 만에 16부작 사랑 이야기를 보여드리게 되어 설레고 어떻게 보일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있습니다."
▶극중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역할인 만큼 수어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나.
"수어를 처음 접하게 됐는데 굉장히 직관적인 표현이라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배웠지만 이게 위치와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되니까 배울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어 대사의 양이 많을 때는 비슷한 단어와 헷갈릴 때도 있어서 집중을 많이 하려고 했습니다. 다른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었죠."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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