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잊히지 않는 한 교수의 푸념

  •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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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5 07:04  |  수정 2024-01-15 07:06  |  발행일 2024-01-15 제22면
삼권분립에 비춰본 현실
학계에선 우려 목소리
거부권·탄핵이 왜 흔한가
극단적 정치에 증오 만연
개헌·지도자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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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지난 연말 행정학 전문가와 공식적으로 만날 자리가 있었다. 1시간 정도 되는 짧은 강연이었지만, 행정학 관점에서 현재 정치를 바라보는 것이 참 신선했다. 그의 말대로 '푸념'에 가까운 내용이었지만 기자에게는 적잖은 울림을 주었기에 글로 옮긴다. 해석은 자유롭게 해주시길 바란다.

"잘 아시겠지만, 대한민국 삼권 분립 국가입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대통령 중심제'이긴 하지만 입법부 권력(국회의원)은 따로 선출합니다. 국회에서는 매년 정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하고 예산도 심사합니다. 대통령은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하지만,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즉 입법과 사법, 행정이라는 권력이 분리되어 서로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죠. 언론에서는 '충돌'이나 '갈등'으로 표현하지만 특정 사안에 의견을 모아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견제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솔직히 요즘에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학계 사람들을 만나면 학부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읍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거부권'이나 '탄핵' 같은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일까요? 전문가인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법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재의요구(거부권)'를 통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수 있고, 국회에서 정부 내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탄핵을 밥 먹듯이 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법을 벗어난 '장외집회'도 등장하죠. 과연 국회에서 정치에서 풀지 않고 헌법재판소 권한쟁의로 가져가는 걸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요…."

"지방이 절박한 것은 맞지만 요즘 국회에선 행정부 업무를 포괄하는 '특별법' 제정이 한창입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필두로 행정의 업무를 법으로 지정해버리는 정치적 '입법'이 시작된 것이죠. 하고 싶은 사업이 있으면 원내 1당이 돼서 법을 만들면 되니 참 편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주변 국가 일본의 '특별법 남용'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 상황에 따른 입법으로 우리보다 3배 이상 특별법이 많은 일본은 그에 따른 법체계상의 혼란, 법적 안정성 약화 등 많은 입법 민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행정부의 권한을 입법으로 정하는 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걸 견제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현 정부를 탓하는 게 아닙니다. 오래된 일입니다. 서로가 너무 극단적입니다. 주로 정치가 그렇지만 입법·사법·행정 모두 마찬가집니다. 특히 어느 정당이나 논평이라고 나오는 것들을 보면 분노를 넘어 증오가 만연합니다. 내가 아니면 적인 상황이 너무나 명확합니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갈등만을 양산해야 합니까. 정치라는 것이 이를 조율하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 삼부 요인에서 이렇게 나서는데 국민들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될까요? 이를 배우는 학생들은 어떻게 자라날까요. 정말 암담합니다. 법을 고쳐야 하면 개헌을 하든가, 사회 분위기를 바꾸려면 대통령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이대로는 너무 암담합니다."

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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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기자

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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