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여백, 그 부재의 의미

  •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 |
  • 입력 2024-01-29 07:09  |  수정 2024-01-29 07:11  |  발행일 2024-01-29 제21면

2024012501000812800032921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영국유학시절 인문대 연구실에서 만난 한 친구는 박사논문 주제가 책의 가장자리를 차지하는 '여백(margins)'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생소한 주제였다. 이는 어느 모로 보나 책 디자이너들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던가. 본문 중심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여백을, 그것도 몇 년에 걸쳐 연구하며 박사논문을 쓴다는 것이 나로선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백의 크기와 디자인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인가, 아니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전쟁' 내용처럼 책의 여백에 숨겨져 있는 미스터리를 탐구하는 학문인가. 또 아니면…

2천년 전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지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e-book에 이르기까지 책에는 본문을 포위하듯 둘러싼 상당한 부분의 여백이 존재한다. 더욱이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던 양피지를 책의 재료로 사용한 중세시대에는 페이지의 절반 이상이 여백으로 구성된 책도 많았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여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전통 산수화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중기 화가 어몽룡의 '월매도(月梅圖)'에는 곧게 솟은 매화나무와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빈 공간의 여백이 있다. 이 경우 여백은 다른 사물과 풍경들을 구체적으로 돋보이게 함은 물론, 배경적 이미지로서 미적 기능을 한다. 이 그림은 유무의 대비에서 비롯되는 묘한 분위기라든가, 군자의 생명력을 매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그 시대의 사상과 정서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동시대 화가 이정의 묵죽화 '풍죽(風竹)'은 비스듬히 젖혀진 대나무가 여백에 숨겨져 있는 거친 비바람에 팽팽하게 맞서며 그 어떤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건넨다. 두 그림은 내게 어떤 조건과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흔들림 없이 마음의 여유와 여백을 가지라고 무언의 말을 한다. 여백은 사물과 마음의 조응 또는 사색의 시간과 침묵의 대화를 유도한다.

한편, 산수화의 여백 처리는 대상과 창작자의 정신세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을 생각해 보라. 먼저 여백-바탕을 보고 난 다음에 그림을 그리라는 그것은 "흰 것을 알면서 검은 것을 유지하라(知其白 守其黑)"는 노자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흰 바탕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며, 비어 있으면서도 가장 충만한 상태를 암시한다. 하나의 심연이자 사건으로서 여백은 경계와 차이를 넘어 모든 새로운 가능성이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하여 텍스트에서 여백은 본문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텍스트의 여백은 저자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것을 채우는 동시에 독자가 저자와의 대화를 이끌어 내는 토포스(topos)로 기능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유일한 현실"(에드가 앨런 포)이라면, 여백은 텍스트에서 우리가 제대로 읽어야 할 유일한 의미이자 표지이다.

웹상에서 더 빨리, 더 많은 자료를 찾으며 일회적이고 단속적으로 브라우징(동물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풀이나 나뭇가지를 뜯어 먹는다는 뜻)하는 우리의 삶은 여백이 주는 많은 의미와 가치들을 놓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짧은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비우지 못해 너무 많은 말을 하거나 여백이 없는 지면을 구성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트로트 가수 정동원의 노래 '여백' 가사처럼 "전화기 충전은 잘 하면서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닌지), 마음에 여백이 없어서 인생을 쫓기듯 (그리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한겨울, 마들렌과 따뜻한 홍차 한 잔의 맛을 온전히 느끼며 내 삶의 여백을 즐기려 한다.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