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칼럼] '길위에 김대중'을 보면서

  • 유영철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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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31 06:56  |  수정 2024-01-31 06:57  |  발행일 2024-01-31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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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언론학 박사)

대학 서클 선배한테서 지난 11일 전화가 왔다. "시내 영화관에서 어제부터 '길위에 김대중'을 상영하고 있으니 한번 보시라! 일찍 종영될지 모르니 빨리 보시길!"하고 권했다. 대학교수로 퇴직한 그 선배는 개봉 첫날 영화를 봤다고 했다. 약속한 터라 며칠 뒤 가까운 영화관에 예매하고 집사람과 같이 관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을 보면서 사실 군데군데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눈물이 나왔다. 전후좌우 관람석도 흐느끼는 반응이었다. 마지막에 미국 망명 후 1987년 광주 망월동 5·18희생자묘역을 찾으면서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는 김대중을 보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다소 알고는 있다 해도 일목요연하게 제시된 다큐를 보면서 탄압과 박해와 용서와 아량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길위에 김대중'은 김대중 3부작 기획 중 1부이다. 100년 전인 1924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 출생, 목포상고 졸업, 해운회사 경영, 신문사 경영, 1961년 민의원 당선(강원 인제) 정치입문, 같은 해 5·16, 1963년 국회의원 당선(전남 목포), 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 1972년 10월유신, 1973년 일본 동경에서 중앙정보부에 납치, 1979년 10·26, 1980년 5·18, 1981년 내란음모죄 사형선고, 1982년 미국 망명, 1987년 귀국, 1부는 같은 해 13대 대선 직전까지의 생애를 조명했다. 잘 몰랐던 부분,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도 많았다. 이런 장면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짚어볼 수 있었다. 올 상반기 나올 2부는 1987년 13대 대선후보 중심의 이야기를 담고, 하반기 나올 3부는 1998년 15대 대통령 취임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과정 등을 다룬다고 한다.

1부를 보면서 김대중이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의해 가택연금, 투옥, 납치 등 목숨마저 위태로울 정도의 탄압과 박해를 당했는데도 실제로 박정희와 전두환을 용서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용서만이 진정한 대화와 화해의 길이다. 정치의 안정은 용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1980년 사형수로 있을 때 김대중이 쓴 옥중일기의 첫 번째 주제가 용서였다.

최근 국내외 학자들은 이 같은 김대중을 사상가로 조명하며 '사상가 김대중'(지식산업사)이란 책을 출간했다. 미국 센트럴미시간대 철학과 호프 엘리자베스 메이 교수는 김대중의 정치가 사상적 특징을 갖게 된 배경으로 그의 신앙에 주목하며 "개인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에서 김대중을 이끈 원칙은 기독교 신앙의 영향이었다"고 설명했다. 김대중은 1970년대의 구금과 수감 중에서도 기독교적 관점을 적용해 공포, 무서움, 불안 등과 같은 '내적 장애'를 없애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분석했다. 용서와 화해라는 김대중의 정치철학을 사상 차원에서 평가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구는 경북은 어떻게 보는가. 왜 그렇게 여기게 됐을까. 누구에 의한 것인가. 우리는 김대중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 12일 일본 동경에서 열린 '길위에 김대중' 무료 시사회에서 경상도 출신의 한 여성(49)은 "우리 또래 경상도 사람들은 김대중은 빨갱이에 대통령병 환자라고 세뇌돼 살아왔다. 김대중에 대해 잘 몰랐는데 오늘 정말 영화 보러 오길 잘한 것 같다. 이 영화는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오마이뉴스 2024년 1월15일 보도). 1924년 1월6일 태어난 김대중은 2009년 8월18일 별세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이다. 이제는 김대중을 있는 그대로 보았으면 좋겠다.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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