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정치가와 정치꾼

  • 정만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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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9 08:00  |  수정 2024-02-09 09:05  |  발행일 2024-02-09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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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작가

1881년 2월9일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을 떠났다. 1866년에 발표된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는 "선택된 강자는 인류에 도움이 된다 싶을 때면 사회의 도덕률을 무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선민(選民)' 대학생이다.

라스콜니코프와 비슷한 가치관에 사로잡힌 인물이 김동인의 1930년대 단편소설 '광염 소나타'와 '광화사'에 나온다. 작곡가 백성수와 화가 솔거는 뛰어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살인 · 방화 등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고 여기는 인간형이다. 누군가는 이들을 탐미주의자로 미화하기도 한다. 더욱 문제는, 김동인 본인이 그런 탐미주의적 가치관의 소유자였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적 인식으로 서구 사회의 혁명사상을 비판하면서, 폐쇄적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야 마땅하다는 휴머니즘 사상을 위대한 문학으로 형상화한 도스토옙스키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감행한 후 스스로 예상한 바 없는, 즉 인간 본성의 죄의식에 사로잡혀 번민하다가 '거룩한 창부' 소냐에게 죄를 고백하고 시베리아 유형을 떠난다. 그에 비해 김동인은 자신의 분신인 작중인물 K를 통해 살인범이자 방화범인 백성수를 끝까지 옹호한다.

정치판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1950년 2월9일 매카시 상원의원이 "국무부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발언하면서 미국은 아무나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벌하는 광풍에 휩싸였다. 하지만 매카시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 뒤에도 누가 공산주의자인지 말하지 않았다.

1990년 2월9일 우리나라 정치판에도 이른바 '삼당합당'이라 불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온건 중도 민족 · 민주세력의 통합을 향한 새로운 국민정당을 창당한다!"라고 선언했다. 다른 정당 구성원과 지지자들을 '과격' 좌파로 규정한 매카시즘적 공격이었다.

1589년 기축옥사 때 선비 1천여 명이 죽임을 당했다. 권력 다툼을 왕권 강화의 기회로 이용한 선조는 사건 처리 책임자에 정철을 임명했다. 정철은 '사미인곡' '속미인곡' 같은 미사여구 가사와 '훈민가'로 대변되는 교훈 시조를 쓴 문인이다. 하지만 그는 정치꾼에 불과했던지 도스토옙스키처럼 깊은 철학을 언행일치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네루는 "정치가는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사회에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흘리게 만드는 정치꾼이 더 많은 듯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꾼과 문학가를 겸직하는 자들도 한둘이 아니니 이를 어쩔 것인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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