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한국현재사] 동아시아의 설날, 왜 다른가?

  •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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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9 06:57  |  수정 2024-02-09 06:59  |  발행일 2024-02-09 제26면
"지리적으로 근접 韓日中
근대화 과정 서로 달라서
다른 형태의 설 명절 보내
설방식도 그 시대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리함으로 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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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오늘부터 대체휴일을 포함하여 나흘간 갑진년의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1월1일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다 나누었는데, 한 달도 더 지나서 다시 새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대체 우리는 왜 그리고 언제부터 이중과세를 하게 된 것일까요?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사회는 음력을 사용해 왔습니다. 조선 왕조도 물론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갑오개혁을 추진하던 개화정부가 근대화의 일환으로 1896년부터 태양력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1896년의 1월1일은 음력으로 1895년 11월17일이었어요.

따라서 정부의 모든 공식기록에는 1895년 11월17일부터 12월31일까지가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정부는 1896년 1월1일에 고종이 참석한 가운데 연회를 열고 각국 공사들을 접견하는 등 새로운 양력 새해 첫날의 모양새를 갖추려고 했어요.

일본은 메이지 5년인 1872년에 문명개화를 내세우면서 태음력을 폐지하고 태양력을 반포하였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음력 설날은 완전히 사라졌고, 오쇼가쓰라는 명칭으로 양력 1월1일부터 사흘 동안이 법정 공휴일이라고 해서 산가니치라고 하지요.

조선을 식민 지배하면서, 일본과 마찬가지로 음력을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일본과 동일한 설날 문화를 정착시키려 한 것이지요. 음력으로 지내는 설날을 구정이라고 하고, 양력 1월1일을 신정이라고 하면서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조선인들은 이를 민족말살이라고 받아들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양력 설날을 유지해 왔으나, 구정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었어요. 1985년부터 민속의 날로 삼아 공휴일로 지정했고, 1989년부터는 설날로 부르기로 하면서 공휴일을 3일로 연장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설날은 음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더 이상 구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북한은 음력이 사회주의 생활양식과 어긋난다는 이유를 내세워 인정하지 않다가 1989년에 비로소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는 양력 1월1일을 설날이라 정하여 사흘 동안 공휴일로 지정했으며, 음력 1월1일은 휴식일이라 하여 하루만 쉬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신해혁명 이후 손문 정부가 설날을 양력으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국민들의 반발로 인해 다시 음력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도 중국을 비롯한 그 문화적 영향권에 있는 지역에서는 춘절이라는 명칭으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씩을 설 명절로 즐기고 있어요. 양력 1월1일은 하루만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사흘을 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리적으로 근접한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각각 다른 형태의 설 명절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근대화의 과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지요. 대체로 일본은 완전히 서양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중국은 전통을 중심으로 서양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중간에서 전통과 근대가 병립하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전통이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데 불편한 요소가 있다면 바꾸는 것이 오히려 정상인 것입니다. 설날을 지내는 방식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리함에 따라 정하면 되는 것이지요. 독자 여러분, 갑진년에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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