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한국계 로맨틱코미디의 아카데미 후보 지명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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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9 06:55  |  수정 2024-02-09 06:59  |  발행일 2024-02-09 제26면
한국 남성이 주연인 로코
아카데미 후보로 지명 화제
한류열풍에 한국 위상 상승
아직 서구사회 주류아니지만
대중문화 지원에 신경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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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한국계 감독이 만든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지명돼 화제다. 이미경 CJ ENM 부회장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CJ ENM과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가 공동으로 투자배급하는,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다. 셀린 송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인데 한석규-최민식 주연의 '넘버3'를 만든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후보로 지명된 부문이 작품상, 각본상이라는 점도 놀랍다. 로맨틱코미디는 가벼운 오락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카데미 작품상 감으로 거론되는 일이 별로 없다. 후보 지명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인 것이다. 셀린 송 감독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크리스토퍼 놀런, 마틴 스코세이지 등 거장들과 나란히 후보에 올랐다.

이 사건이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의 남주인공이 유태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동양인의 역할엔 한계가 있었다. 무술을 쓰거나 우스꽝스러운 보조 캐릭터 정도가 동양인의 몫이었다. 특히 로맨스의 남주인공은 그 사회의 여성들에게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물이기 때문에 서구권에서 동양인이 맡기 어려웠다.

동양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이 분명히 있었고, 또 동양인 남성의 외형이 서구적인 기준에서의 섹시함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이 그런 역할을 맡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우리가 좁은 의미의 동양이라고 하는 동아시아 황인의 나라들 중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유독 약했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은 우리보다 크기도 하거니와 이 나라들의 전통문화에 경외심이나 동경심을 품고 있는 서양인들이 많다. 반면에 한국은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서구인들이 많았고, 알더라도 한국전쟁의 잿더미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이었다.

한국 남성이 주연인 로맨틱코미디가 미국에서 주목 받은 사건이 그래서 이례적이다.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한국적인 정서뿐만 아니라 한국어 대사까지 많이 담겼는데 그런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도 눈길을 끈다. '기생충'이 한국어 대사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에 이어 또다시 한국어가 미국에서 주목 받게 됐다.

이 작품은 이미 제58회 전미 비평가협회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오는 18일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 외국어영화상, 오리지널 각본상 후보에 올라 있다. 유태오는 관련 인터뷰에서 "동아시아 배우로서 무협이나 코미디 같은 장르에 기대지 않고, 로맨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류열풍으로 인해 한국의 위상이 급격히 상승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다. 얼마 전 미국 드라마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하는 에미상에선 한국계가 만든 한국계의 이야기 '성난 사람들'이 작품상, 감독상, 작가상, 남우주연상 등 8관왕에 올랐다.

동양인, 특히 한국계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 무존재감의 타자 정도로나 인식됐었는데 방탄소년단, '기생충' 등이 주목 받으며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방탄소년단은 심지어 백인들의 우상 대우까지 받으며 새 시대의 '섹시한 남성'상으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다. 한국계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김밥, 김치 등 한식도 뜬다. 물론 아직 완전히 서구사회의 주류가 된 건 아니지만 최근의 위상 상승 속도는 가히 기적적인 수준이다. 한류의 경쟁력이 계속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한국 국가브랜드 상승에 막대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국가가 대중문화산업 지원을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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