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괴테와 박지원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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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2 08:10  |  수정 2024-03-22 08:11  |  발행일 2024-03-22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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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1832년 3월22일 괴테가 세상을 떠났다. 괴테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파우스트'를 떠올리게 하고, 여행 애호가의 뇌리에 독일 '괴테 가도'를 연상시켜 준다. 괴테 가도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여행길이다.

괴테 가도는 2003년 11월25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생가 안내인에게 들은 말 두 가지를 기억나게 한다. 20년이 지났는데도 그 말이 생생한 것을 보면, 들을 때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처음 들은 말은 "한국인들은 괴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가 봐요?"였다. 무슨 뜻인가 싶어 쳐다보니 그는 "얼마 전에 남한 고위 공직자들이 다녀갔는데, 입장료가 비싸다면서 괴테 생가 입구에서 단체 사진만 찍고 돌아갔어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안내인은 "한국인들은 로망 가도를 더 좋아해요. 프랑크푸르트부터 북쪽으로 함부르크까지 이어지는 길인데, 대단한 러브 스토리가 깔려 있는 줄 여겨요. 그 길은 로마 군대가 게르만 일대를 공격할 때 오간 정복로인데…"라고 소개했다.

괴테 가도에는 괴테 관련 유적들이 즐비하다. 대표 지역은 괴테가 '일름 강의 아테네'로 격찬했던 소도시 바이마르이다. '독일 문화의 메카' 바이마르는 괴테가 생애 대부분을 보낸 곳이다.

바이마르에는 26세부터 82세까지 괴테의 56년 자취가 가득 배어 있다. 1782년부터 1832년까지 괴테가 50년이나 살았던 프라우헨호프 집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 직전인 1776년부터 1782년까지 거주했던 가르텐하우스도 일름 공원에 있다.

괴테가 연모한 슈타인 부인의 집은 호사가들의 입방아 용도로 아주 안성맞춤이다. 괴테가 실러와 함께 서 있는 극장 앞 동상은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러는 괴테를 배우려고 바이마르로 옮겨와 살았는데, 지금도 같은 바이마르 시민으로 남아 있다.

괴테는 후배 실러를 크게 아꼈다. 죽으면 같은 공동묘지에 묻으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결국 두 사람은 한 동상에 나란히 모셔져 오늘도 여행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동상에서 괴테는 왼손으로 실러의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감싸고 있다.

괴테(1749∼1832)와 비슷한 시기에 박지원(1737∼1805)이 살았다. 어떤 자료는 박지원도 괴테 타계일인 3월22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한다. 실학자 박지원은 '허생전'과 '호질'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박지원의 글이 줄곧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므로 그의 이름을 모른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지원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적이나 현창 공간은 거의 없다. 정치인들이 부르짖는 '문화 강국' 구호는 이처럼 황당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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