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지키려면

  •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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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5 07:02  |  수정 2024-04-05 07:03  |  발행일 2024-04-05 제26면
항일지사 최다 배출한 영남
2·28민주운동의 고장으로
의를 위해 맞선 진정한 보수
기념관 건립도 중요하지만
이런 자세 이어받는게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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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어떤 사람들은 늘 '이미 지나간 일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한다'고, '독재시대 통치자의 시비와 공과는 역사에 맡겨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제가 훨씬 더 중요한데 왜 과거청산을 해야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청산은 정치투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도 아주 중요합니다. 발전과 정의가 함께 존재하는 나라가 마땅히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청산은 투쟁이 아닌 화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정부가 단호히 지켜야 하는 원칙입니다. 과거청산은 국민 여러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온 국민이 과거를 당당하게 직면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게 됩니다."

위의 내용은 2017년 타이베이에서 열렸던 2·28 사건의 70주년 기념사에서 타이완의 차이잉원 총통이 했던 기념사의 일부인데요. 현장에서 연설을 직접 들으면서 타이완과 우리의 현실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경제를 내세우며 과거청산을 반대하고 독재자의 잘못을 은폐하고 오히려 찬양하는 논리도 있으니까요.

대륙에서 마오쩌둥에게 쫓겨 타이완으로 피신했던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일당독재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했습니다. 수많은 타이완 주민을 학살했던 1947년의 2·28 사건 이후, 계엄령을 실시하여 정치적 움직임을 원천 봉쇄했어요. 국민당 정부에 반대하는 민주인사들은 멀리 뤼다오라는 섬으로 보내어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1979년 타이완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메이리다오(美麗島)'라는 잡지사를 만들었어요. 그들은 처음으로 계엄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무력으로 진압당하고, 관련자들이 군사재판을 받고 투옥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관련자들과 그들의 변호인들이 대만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이 되었고 이들이 1986년 민진당을 창당했어요.

1987년 마침내 계엄령이 해제되었고 총통 직선제가 도입되었습니다. 2000년에 치러진 선거에서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당선되어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되었어요. 이후 다시 국민당으로 정권이 넘어갔다가 2016년부터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다시 집권하고 재선에 성공하여 이번 5월로 8년 동안의 모든 임기를 마치게 됩니다.

우리는 단교하기 전까지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는 대신 타이완을 자유중국이라고 불렀지요. 그러나 그 시절 자유중국에 자유는 없었고 사실은 일당독재 국가였습니다. 과거 우리의 독재자들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외쳤지요. 하지만 그들의 자유는 종신독재로 귀결되었고, 반공을 내세워 자유와 민주주의를 압살했던 것입니다.

흔히 영남을 보수적인 지역이라고 하는데요. 보수란 전통과 원칙을 중시하고 도덕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나라를 위해 책임 있게 행동하는 집단을 일컫는 것입니다. 영남의 선비들이 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부당한 권력에 맞섰으며, 국권을 빼앗은 일본에 대해 자결과 의병으로 맞섰던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의 면모라고 할 수 있지요.

권력에 굴종하거나 부정부패와 독재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사실 보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영남은 가장 많은 항일지사를 배출했고, 독재를 무너뜨린 4·19 혁명의 도화선이었던 2·28 민주운동의 고장입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보수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기념관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자세를 이어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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