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오발탄

  • 정만진 소설가
  • |
  • 입력 2024-04-12 07:53  |  수정 2024-04-12 07:53  |  발행일 2024-04-12 제17면

2024040401000204800007591
정만진 소설가

65년 4월12일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가 세상을 떠났다. 65년이라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1960년 전이니 참으로 까마득하다. 그래도 세네카라는 이름은 아주 낯익다. 그는 많은 명언을 남긴 문학가이자 철학자로 인류에 기억된다. 또 폭군 네로의 스승이었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세네카의 경구 중 "살아 있는 기간을 삶으로 생각하지 않고, 삶이 필요한 동안만 산다고 깨달으면 현자"라는 말은 자못 사람의 폐부를 찌른다. 이는 "인간은 육체에 구속되어 있지만 올바른 이성에 의해 인간답게 살아가고, 죽음으로써 노예 상태를 벗어난다"라는 자신의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세네카는 철학을 "선(善)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했다. 제자 네로는 스승으로부터 배운 철학을 전혀 실천하지 않았다. 스승은 "인간은 잘 죽는 법을 알지 못하는 한 잘 살 수 없다"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네로는 잘 죽기는커녕 최악의 사망을 맞이했다.

네로는 어머니를 죽이고 아내를 죽이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시인이자 음악가인 양 행세했다. 그러다가 반란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리자 "위대한 예술가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 겨우 31세였다.

1923년 4월12일 대한민국의 유명 배우로 성장하는 김진규가 태어났다. 그는 1955년 '피아골'로 영화계에 등장했고, 이듬해인 1956년 '포화 속의 십자가'와 '처녀 별'에도 출연했다. '피아골'과 '포화 속의 십자가'는 제목만으로도 죽음 이야기가 다뤄지리라 짐작된다.

'처녀 별'은 예외일 듯하지만 그 역시 삶과 죽음에 얽힌 담론을 담고 있다. 주인공 처녀 별아기는 사랑하는 도령의 집에 잠입한다. 시아버지가 될 뻔했던 도령의 아버지가 '사화'라는 이름의 권력 투쟁 끝에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였다. 그 복수를 위해 별아기는 생사의 기로에 선 것이다.

유현목 감독, 김진규 주연 '오발탄'은 "20세기를 빛낸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로 손꼽힌다. '오발탄'은 1999년 모 언론사가 영화계 인사 10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8표를 얻어 1위에 등극했다. 임권택 감독 '서편제'가 28표로 2위, 나운규 감독 '아리랑'이 24표로 3위에 올랐다.

이범선이 1959년에 발표한 소설 '오발탄'의 주인공 철호는 삶에 지친 나머지 스스로를 오발탄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문제인간인 것은 아니다. 인류사회의 오발탄은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이다.

<소설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