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삶에 항복할 때 오는 것들

  •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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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1 07:21  |  수정 2024-04-11 07:29  |  발행일 2024-04-11 제22면
지금 지치고 외롭고 힘든데
끝내 해내야 한다고 애쓰는
사람있다면 한번 놓아보라
새 삶에 마음을 열어보라
찬란히 아름다운 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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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운전을 즐긴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20대 초부터 운전을 했음에도. 유학생활 때도 최대한 좋은 위치에 집을 얻어 걷거나 대중교통으로 일상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그러다 새스커툰에 처음 왔을 때, 눈보라 속에서 혹은 빙판길 도로를 캐나다의 긴 겨울 동안 운전해야 하는 건 가장 큰 공포 중의 하나였다. 차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북미 특히 중소도시의 대중교통은 비효율적이라 "여기는 운전 안 하면 못 살아"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사는 곳. 첫 학기 단과대학 교수회의 때 학장에게 "오늘 회의에 못 갈 것 같아. 이 날씨에 도저히 운전을 못 하겠어"라고 e메일을 보냈을 정도였다. "이해해. 다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려"라는 답이 왔지만, 그것도 처음 한두 번이지 계속될 순 없는 일. 게다가 수업은 꼭 가야 하니 어깨와 목에 바짝 힘이 들어간 채 죽을 것 같은 무서움을 참고 운전해서 수업 갔다 집에 오면 "휴 오늘은 이제 안 나가도 돼"라고 절로 안도의 숨이 내쉬어졌다. 그리고 정말로 전혀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지인이 식사 초대를 해도, 운전이 무서워 못 간다고 했을 정도로. 사람들은 친절해서 태우러 와주기도 했는데 그것도 처음 한두 번이고.

코로나 때 한국에서 지내다 연말 복귀하면서 한동안은 운전하지 않고 지내겠다고 결정했다. 상점들 많은 곳에 집을 얻었고, 수업 가야 하는 날은 정 안되면 비싸도 택시나 우버를 이용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건 10여 년 전의 나에게, 정말 무서워서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해내야 한다고, 나를 도와줄 사람은 누구도 없으니 내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정말 무섭고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지금의 내가 주는 선물이었다.

삶이란 참 신비로워서, 그러고 나니 우연히 만난 예전 학생이 마침 근처에 사는 대학 교직원이 되어 있어 캠퍼스 가는 날 태워주겠다고 나섰다. 로터리 클럽 모임 때는 멤버들 중 가는 길에 태워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이곳에 한국 성당은 없으니 좋은 교회나 성당을 찾는다고 했더니 동료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오면 태워주겠다고 했다. 예전 친척이 이 도시 살 때 10년간 예배가는 길 태워준 적 있다고. 그렇게 그 동료의 남편까지 매주 교회 오가는 길에 만나며 친구가 되었다. 친한 친구들과 공연이나 식사 약속이 있을 때는 이제 당연히 몇 시까지 태우러 갈게 이런 메시지가 온다. 물론 내가 타협해야 하는 부분도 당연히 있다. 교수들은 수업, 회의 외에는 컴퓨터로 대부분 업무가 이루어지니 집에서 일했는데, 교직원들은 출근 시간이 이르니 아침 일찍 가서 퇴근 시간까지 오피스에서 일한다. 집보다 불편한 점이 많지만, 이 또한 덕분에 업무를 되도록 집에 가져오지 않아도 되고 동료들과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 줄 아는 건 중요하고, 동시에 도움이 필요할 때 내 나약함을 인정하고 도움 청할 줄 아는 건 내면이 강해졌을 때만 할 수 있더라. 그렇게 내 에고를 항복할 때 삶은 내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다주고. 지금 지치고 외롭고 힘든데 끝내 해내야 한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놓아보라고, 그때 펼쳐질 새로운 삶에 마음 열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찬란히 아름다운 봄이니까.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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