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時時刻刻)] 에티켓도 국력이다

  •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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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6 07:01  |  수정 2024-04-16 07:03  |  발행일 2024-04-16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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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해외여행이나 유학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감동적인 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소매치기 같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한 나라에서 짧은 기간 어쩌다 겪은 경험이 그 나라의 이미지로 각인되는 경우도 많다. 유럽에서 우연히 겪은 경험의 단상들이 스쳐 간다. 유럽사람들은 어떤 곳이든 출입구를 드나들 때 반드시 뒤를 돌아보며 사람이 뒤따라오면 문을 잡아주고, 엘리베이터에서도 누군가의 기척이 있으면 열림 버튼을 누르고 끝까지 기다려준다. 한번은 여행 중 호텔을 찾지 못해 헤매다 행인에게 길을 물으니, 꽤 멀리 떨어진 호텔 앞까지 직접 데려다주고 가던 길을 한참 되돌아가던 사람도 만났었다. 이런 모습이 나에게는 아직 낯설었던 시절, 타인에 대한 작은 배려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해외에서 좋은 경험만 있지는 않았다. 관광지에서 지하도를 걸어가다가 능청맞게 내 백팩의 물건을 훔치려다 눈이 마주쳐도 놀리듯 헤죽거리며 지나가는 소매치기범도 만났었다. 지하철에서 뒷주머니의 지갑과 휴대폰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또 자리에 앉아서 나의 이런 상황을 빤히 지켜만 보는 현지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적극적으로 제지하거나 도와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낯선 곳에서 더 외로워지고 불안한 마음이 들곤 했었다.

어떤 나라에서 좋은 경험을 통해 얻은 좋은 이미지가 그 나라의 전부가 되기도 하고, 안 좋은 경험이 또 그 나라의 전부로 인식되기도 한다. 한 나라 국민의 작은 에티켓이 한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이 국력이 된다. 그렇다면 외국인의 눈에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치안이나 도둑이 없다는 점에 매우 놀란다고 한다. "한국은 밤에도 안전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다" "카페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 비싼 물건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의 윤리의식이 강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한국은 사생활이 침해될 정도로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사생활 보호가 약하지만, 치안은 좋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한몫하기도 한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 운크타드(UNCTAD)는 만장일치로 우리나라를 선진국 지위에 올려놓았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만큼 경제적 지위뿐만 아니라 윤리·도덕적 지위도 '동방예의지국'의 명성답게 선진국으로 평가받았으면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막말에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맹자'에 "윗사람이 잘하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그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라는 말이 있다. 또 '논어'에는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라,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눕는다(君子之德, 風, 小人之德, 草. 草上之風, 必偃)"라는 말도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범을 보여야 사회가 더 건전해지지 않을까. 고대부터 법만 따지고 정치인들이 염치가 없으면 국민도 염치가 없어진다는 가르침이 있지 않은가.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의 배려와 서로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는 에티켓이 모이면 국격도 높아질 것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해외에 대한민국을 체계적·포괄적으로 바로 알리기 위해 현재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는 한국 관련 정보의 현황을 점검·조사한다고 밝혔다. 케이팝, 불닭볶음면, 떡볶이 같은 것뿐만 아니라 한국이 전통 예절을 지닌 바른 나라의 이미지로 세계에 인식될 수 있기를 바란다.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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