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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 '연정수업', 종이에 엷은 색, 38.1×59.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인왕산 자락이면 좋겠다. 시인은 운 좋게도 옥류천 가까운 곳에 헌 집을 구입했다. 그러나 집을 새로 지을 돈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집부터 설계했다. "기와와 백토 장식을 하지 않고, 기둥과 용마루를 크게 하지 않는다. 푸른 홰나무 한 그루를 문 앞에 심어 그늘을 드리우게 하고, 벽오동 한 그루를 사랑채에 심어 서쪽으로 달빛을 받아들이며, 포도넝쿨이 사랑채의 옆을 덮어 햇볕을 가리게 한다." 시인 이이엄 장혼(張混, 1759~1828)이 자신의 '평생지(平生志)'에 쓴 글이다. 시인다운 정취가 가득한 아름다운 집이다. 10년이 흘러, 그는 계획대로 집을 지었다. 시인에게 집이 곧 작업실이듯 화가에게도 집은 작업실을 의미한다. 옛 화가들이 꿈꾼 화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선시대 회화를 들춰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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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독서여가', 비단에 채색, 24.0×16.8㎝, 간송미술관 소장 |
◆인왕산 품에 안긴 정선의 화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52세에 인왕산 기슭의 옥류동으로 이사한 후 자신이 꿈꾸던 집을 지었다. 그리고 생을 마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봄이 되면,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인왕산 중턱 필운대(弼雲臺)에 올라 봄꽃 놀이를 즐겼다. 때로는 인왕산에 올라 시를 읊는 '아회(雅會)'도 가졌다. 인왕산과 가까운 백운대 일대는 조선시대에 문인과 예술인이 추앙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일찍이 인왕산의 위세를 알아본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이 무계정사를 짓고 무계동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왕자와 사대부들이 모여들어 시를 읊고 그림을 그렸다. 청풍계 골짜기에는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이 태고정을 지어 노론 학자와 문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의 동생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물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 구르는 소리같이 들리는 골짜기"의 옥류동에 터를 잡자 1683년 손자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은 여섯 명의 아들을 위해 육청헌을 지어 살았다.
김수항의 아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과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은 진경문화를 주도한 학자였다. 인왕산 자락에서 이웃으로 살던 정선과 진경시의 대가 사천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선비화가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 1686~1761) 등은 김창흡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며 '진경시대'를 이끌었다. 정선의 '필운대상춘도(弼雲臺賞春圖)'도 필운대가 무대다. "멀리 오른쪽에 뾰족한 관악산이 있고, 그 아래 이층 누각의 숭례문이, 왼쪽에는 남산이 있고, 필운대 아래 서촌마을이 펼쳐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반면에 '독서여가(讀書餘暇)'는 오십대 초반 백악산 아래 유란동에서 생활하던 모습을 그렸다.
세월 담은 소나무 흐르는 물 가까이
화려한 정원 배경 이인문 '연정수업'
고동서화 곁에 두고 한가로운 한때
김홍도식 화실의 단면 '포의풍류도'
인왕산 옥류동에 터 잡은 겸재 정선
인생 후반의 모습 수많은 작품으로
화가의 운치있는 집 작품의 산실로
단아한 집 풍경이 한 장의 스냅사진 같다. 지붕을 비스듬히 처리하여 슬쩍 방안을 보여준다. 뒷마당에는 향나무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공간에 변화가 생겼다. 한낮의 햇살 아래 향나무가 기름진 가운데, 하늘색 꽃잎으로 장식된 서가에는 책이 쌓여 있다. 불을 밝힌 듯한 촛대와 매화를 꽂았을 법한 화병이 놓여 있다. 서가의 열린 문 안쪽에는 폭포와 노송을 배치한 산수화가 장쾌하다. 바닥에는 계절에 맞게 시원한 돗자리를 깔아 놓았다. 방과 연결된 툇마루에는 부채를 든 선비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꽃을 감상한다. 바로 정선이다.
마당에는 마루 쪽으로 신발을 벗어 놓았고, 두 개의 화분이 마당 가운데 있다. 물받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방안에 두었던 것을 잠시 마당에 내다 놓은 것 같다. 활짝 핀 꽃 한 송이가 시선을 끈다. 손에 든 부채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멀리 산이 있고, 강에는 배 한 척이 유람을 즐기는 그림이다. 정선은 옥류동에서 인생 후반의 삶을 그림으로 남겼다. '인곡유거(仁谷幽居)'도 그중 하나다. 서가에서 책을 읽는 정선의 모습이 보이고, 마당에는 큰 버드나무와 오동나무, 키 낮은 나무를 심어 정원을 꾸몄다. 버드나무와 오동나무 위로 포도 넝쿨이 나무를 타고 올라 운치를 자아낸다. 그가 설계한 집은 작품의 산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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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포의풍류도', 종이에 엷은 색, 27.9×37.0㎝, 개인 소장 |
◆이인문과 김홍도가 꿈꾼 화실
세대가 바뀌어도 옥류동은 여전히 문인과 화가에게 사랑받는 곳이었다. 송석원(松石園) 천수경(千壽慶, ?~1818)이 옥류동에 송석원을 짓자 여항시인들이 모여들었다. 천수경은 중인계층의 문학 단체인 '송석원시사회(松石園詩社會)'를 결성하여 시회를 열었다. 시인 장혼을 비롯하여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李寅文, 1745~1824)과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같은 화가들도 모임에 참석하여 서양화법을 구사한 시화(詩畵)를 그렸다. 바로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이다. 그들은 희귀한 그림과 서적으로 장식한 서재에 지인들을 초대하여 그림과 서적을 감상하며 예술을 즐겼다. 이인문은 자연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고자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평생 화원화가로 공직생활을 한 그는 화실을 겸비한 집을 설계하다가 먼저 그림으로 실행했다. '연정수업(蓮亭授業)'은 화려하게 꾸민 정원을 배경으로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풍경이다.
그가 생각한 계획에 맞춰 중앙에 연못을 조성했다. 수련이 연못을 채우고, 우람한 괴석을 좌우에 배치하였다. 연못에는 배 한 척을 정박해 두었다. 또 못 안에 정자를 지어 경관을 감상하도록 했다. 못 주위에는 소나무를 심고, 사계절 꽃이 피도록 조경해 놓았다. 그 사이로 사슴이 뛰어논다. 연못 주변에 소년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고목이 우거진 뒷마당에서 시동이 차를 끓이는 중이다. 육각형의 정자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공부를 하다가 잠시 담소를 나눈다. 이인문은 과연 이 그림 같은 꿈을 현실에서 이루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화실은 주인인 화가를 닮는 법이어서 이 그림과 닮은 구석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김홍도는 '연정수업'과 정반대로 그렸다. 자연에서 방 안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비파를 연주하는 선비가 주인공인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가 그것인데, 이 그림은 '김홍도 식' 화실의 단면을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 '포의풍류도'는 김홍도가 가장 바쁜 사십대에 자신을 반추하며 그린 작품이다. 고동서화를 곁에 두고 맨발을 드러낸 선비의 한가로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벼슬하지 않는 선비'란 뜻의 '포의풍류도'는 김홍도의 소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당비파를 연주하는 사방관을 쓴 선비와 주변의 진귀한 고동서화들. 모두가 유교와 도교를 상징하는 기물들이다. 도자기에 영지버섯과 사슴뿔을 꽂아두었다. 파초의 큰 이파리가 있고, 붓과 벼루, 먹이 놓여 있다. 생황과 칼, 호리병도 옆에 두었다. 호리병에는 잘 익은 술이 들어 있으리라. 모두 그의 애장품들이다. 물론 서책과 더불어 그림 그릴 두루마리까지 있다. 그림 왼쪽에는 "흙벽에 아름다운 창을 내고 한평생 벼슬 없는 선비로, 그 속에서 시를 읊조리며 살리라"라는 화제를 적었다. 중국 명대의 문인화가 미공(眉公) 진계유(陳繼儒, 1558~1639)의 글이다. 진계유가 자연 속에서 매화를 감상하며 시를 지었듯이 김홍도도 자연인으로 살고자 한 것 같다. 현실은 그를 한가롭게 놓아주지 않았지만 그 마음만큼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옛 화가들이 반할 나의 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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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화가) |
17년 전, 시인 장혼의 글에 취해 화실에 대한 로망을 가졌고, 나도 어느덧 화실을 두었다. 방 두 칸을 터서 조성한 내 화실은 무엇보다도 넓은 창으로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좋다.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진경이다. 때때로 구름과 바람과 비를 감상하며, 멀리 호수까지 볼 수 있다. 성향 좋은 오디오를 설치하여 양떼처럼 음악도 방목한다. 벽마다 책으로 채우고, 친구들과 나눈 작품을 걸어 두었다. 주변에 물감들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 그림 그릴 화판이 나를 기다린다. 옛 화가들의 화실이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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