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
도시 학생들의 정서 불안과 폭력성은 학교 건물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목조 건물과 단층 지붕은 바람 소리, 벌레 소리, 빗소리가 그대로 교실로 들어올 수 있어 학생들의 정서 순화에 크게 도움이 된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자연의 소리를 차단하여 풍경을 삭막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성격을 거칠게 하는 데 일조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론 프리드만의 저서 '공간의 재발견'에서도 환경의 영향력에 관한 의미 있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미국 라이스 대학교에서 학생 100명을 상대로 실험했다.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층고가 약 3m와 2.4m인 방에서 시험을 치게 하고는 어느 쪽이 더 창의적인 답지를 내는지 살펴봤다. 천장이 높은 방에서 시험 친 학생들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물체 간 연결고리를 찾는데 더 뛰어난 답안을 냈다. 높은 천장이 생각의 폭을 넓혀 창의성을 고무시켰기 때문이다. 공간과 창의성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학습 환경과 교수 방법은 학생의 성격 형성, 창의력, 상상력, 학업 생산성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플라톤은 오늘의 대학과 비슷한 고등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를 설립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을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을 붙였다고 한다. 기하학은 진리를 향한 영혼을 도출하고 철학의 정신을 창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수제자였다. 그런데도 플라톤 사후 그는 학교를 물려받지 못했다. 그가 아테네 출신이 아니고, 아테네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던 변방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플라톤이 죽자,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왕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됐다. 알렉산드로스가 왕위에 오르고 동방 원정을 떠나자, 그는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이란 학교를 세웠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기하학을 선수과목으로 요구할 정도로 일정 학력을 가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학교는 그에 비하면 고교 과정 정도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 소크라테스처럼 걷기를 좋아했다. 그는 걸으며 생각하기를 즐겼고, 사색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환경, 동물, 과학과 우주 등의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통찰했다. 직접 발로 밟으며 눈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그로 하여금 경험주의적 자연과학자가 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과 산책하며 강의하고 토론하길 좋아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와 함께 거닐던 페리파토스(산책길)에서 페리파토스학파(소요학파, 消遙學派)라는 말이 나왔다.
길에서 배우는 페리파토스 교육은 노마드(nomad, 유목민) 인생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의 세계는 수많은 사람이 자의와 타의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노마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국경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지금은 발로 현장을 밟으며 경험을 쌓고 견문을 넓히는 교육이 중요하다. 과거 전통 사회의 노마드는 유목 생활을 하며 자녀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전문 지식, 협업, 야성, 무리를 이끄는 리더십, 가정 책임지기, 낭만적 삶, 재정관리, 건강관리, 갈등 처리,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등을 가르쳤다.
현대의 노마드는 국내외 여행을 통해 길 위에서 나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며 배운다.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는 브레인스토밍을 자극하고, 어느 순간 새로운 사업 아이템과 창업, 기발한 발상, 새로운 방향 등에 관한 영감을 준다.
아문센은 남극 탐험대를 모집할 때 '20마일 행군(20 Miles March)'을 지원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루 20마일(32㎞)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 그는 단조로움과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남극점에 최초로 도착했다. 탐험대원들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깨달았을까. 걷는 사람만이 세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걷기와 여행은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고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합성한다. 히포크라테스는 "사고란 바로 걷기"라고 했다. 니체도 "모든 가치 있는 생각은 걸을 때만 얻을 수 있다"라고 했다. 읽으면서 걷고, 걸으면서 사색할 때 예술적, 학문적 영감은 잘 떠오른다. 루소는 "오늘도 걷는다. 걷지 않으면 생각도 멈춘다"라고 했다.
컴퓨터, 스마트폰, 온라인 기반의 오락과 여가 활동으로 사적인 밀실에 틀어박힐수록 몸은 점점 왜소해지고 정신은 황폐해진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온 가족이 지역에 있는 둘레길이라도 같이 걸어보자. 걷기와 여행을 통해 사람은 완성되고 성숙한다.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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