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삼성 이재현이 3회초 무사 2, 3루에서 역전 스리런홈런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
박지형 문화평론가 |
요 며칠 나는 야구 경기를 TV로 연달아 시청했다. 라이온즈가 다시 상위권에 기웃거리는 탓이다. 과거에는 듬직한 골수팬이었지만 지금은 간사한 기회주의 팬이 된 나는, 이렇게 삼성이 잘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만 슬쩍 슬쩍 야구 경기를 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몇 년에 한 번씩 야구를 보다보니 볼 때마다 적응에 애를 먹는다. 내가 알던 선수들이 거의 대부분 다 사라지고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선수들이 라인업을 빼곡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오승환, 강민호, 구자욱, 원태인 네 선수 말고는 전부 처음 보는 녀석들 같다. 아니 하나 더 안면 있는 선수가 있긴 한데 그게 트레이드로 넘어 온 박병호다. 삼성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보니 뭔가 두정갑을 걸친 항왜(降倭)를 보는 것 마냥, 듬직하면서도 이질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편안하게 몰입해 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다소간 철학적 주제를 내포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팀이 과연 내가 알던 '그 삼성 라이온즈' 맞아?" 말장난 같지만 이것은 은근히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만약 이 라이온즈가 내가 알던 그 팀이 맞다면 계속 경기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굳이 잘 모르는 팀 때문에 그 끊기 어려운 야구의 연을 새로 맺기가 마뜩찮은 것이다.
과거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에서 대승을 거두고 아테네로 귀환하자, 열광한 시민들은 그가 타고 온 배를 영원히 보존하기로 결정한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실제로 수백 년간 이 배를 보존하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배의 일부가 썩으면 그 부속을 떼 내고 똑같은 재질의 부속을 만들어 갖다 붙이는 식이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사실을 놓고 질문을 던진다.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수백 년 뒤에는 원래 테세우스가 탔던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조리 교체되고 말 것이다. 그럼, 그 배를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 부를 수 있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유명한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이 사고 실험에 새로운 쟁점을 추가한다. '원래 테세우스의 배에서 수리를 위해 뜯어져 나간 배의 부속들을 다 모은 다음 그것으로 똑같은 배를 한 척 더 건조한다면, 진짜 테세우스의 배는 이제 어느 쪽인가? 기존의 배인가? 아니면 새로 조립한 배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이렇게도 치환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해창, 허규옥, 장효조, 이만수의 1985년 라이온즈가 나타나 우리가 진짜고 지금 뛰고 있는 김영웅, 이재현, 이성규, 김지찬의 2024년 라이온즈는 단지 레플리카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대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철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지난 2천 년간 수많은 논쟁을 펼쳐왔다. 혹자는 85년 팀이 오리지널이란 논리를 폈으며, 혹자는 24년 팀이 전통을 잇는 진짜라 주장했다. 어떤 자는 둘 다가 라이온즈라고 했으며, 또 다른 자는 그 둘 다가 아니라고 했다. 그 수많은 결론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것이었다. '그냥 개인의 주관적 인식이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그 팀이 바로 진짜 라이온즈다.' 그런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류중일, 강기웅, 양준혁, 김성래의 93년 팀을 나만의 '테세우스의 라이온즈'로 꼽겠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우리 몸도 실제로는 테세우스의 배처럼 모든 세포가 몇 달 주기로 거의 대부분 교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러니까 나 역시도 '93년의 나'와 '24년의 나'는 물리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나인 것이다. 근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24년의 라이온즈는 93년의 라이온즈보다 더 예쁘고 세련되어졌는데, 왜 24년의 나는 93년의 나보다 더 추하고 촌스러워졌나? 젠장. 문화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