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영남일보 취재진이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2023년(위)과 2025년에 5만원으로 구매한 차례용품.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
실제 통계로도 설 차례용품 물가는 매년 오르고 있다. 지난 21일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설 차례용품 가격을 비교·조사한 결과, 올해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평균 비용(4인 기준)은 전통시장 28만7천606원, 대형마트 36만986원으로 나타났다. 2년 전인 2023년 평균비용(전통시장 27만656원, 대형마트 32만9473원)과 비교하면 소폭 올랐다.
그렇다면 각 가정에서 현실적으로 느끼는 '피부 물가'는 어떨까. 2년 전 영남일보 취재진은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설 차례용품을 장만한 적 있다. 당시 5만원으로 사과·감·배·밤·대추·조기·포·콩나물 등 8개 품목을 구입할 수 있었다. 양은 다소 적었지만 어느 정도 구색은 갖췄다. '5만원의 행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2년 만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전통시장 상인들과 소비자들은 지금은 5만원으로 절대 차례상을 차릴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까. 영남일보 취재진이 대구지역 3개 전통시장을 다시 찾아 '5만원으로 차례용품 구매하기' 도전에 나섰다. 정말이었다. 경상도 말로 택도 없었다. 도대체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물가가 오른 걸까.
'설 차례상에 고기는 못 올린다'…전통시장서 5만원 장보기 도전
![]() |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앞둔 지난 16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영남일보 취재진이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품을 구매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
서문·칠성·서남신시장 방문
성균관의례委 제시 기준 삼아
저렴하게 구색만 갖추려 해도
2년새 2~3배 뛴 사과·배값 등
간소화 표준안도 맞출 수 없어
"넉넉한 시장 인심 그나마 위안"
◆5만원 차례상 보기 나선 기자들
지난 16일 영남일보 구경모 수습기자와 조윤화 수습기자는 대구 북구 칠성시장과 달서구 서남신시장을 찾았다. 수습기자들은 아침부터 시장 곳곳을 이리저리 다녔지만 5만원으로 설 차례상 제수용품 구매가 힘든 것을 확인하고 고민에 빠졌다. 최대한 저렴하면서도 차례상 구색을 갖추기 위해 나물을 원재료로 살지, 반찬가게에서 살지, 과일의 품목과 개수까지도 고민하며 시장을 누볐다.
이들은 칠성시장에서 사과 1알(7천원), 배 1알(6천원), 고사리 한봉지(6천원), 시금치 한봉지(5천원), 콩나물 한봉지(2천원), 밤(5천원), 대추(5천원), 황태포(7천원), 떡국떡(5천원) 등 9개 품목을 총 4만8천원에 구매했다. 얇은 주머니 사정 탓에 법주와 돼지고기는 내년 설을 기약해야 했다.
이어 달려간 서남신시장에서는 4만9천원을 소비했다. 사과 1알(8천원), 배 1알(8천원), 곶감(5천원), 떡국 한 봉지(5천원), 황태포(5천원), 시금치 한단(4천원), 고사리 한봉지(5천원), 밤(4천원), 대추(5천원) 등 9개 품목을 마련했다. 예산 한계로 인해 튀김이나 고기 종류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제안한 나물은 두 가지 밖에 채우지 못했다.
같은 시각 서문시장에서 이남영 기자는 5만원으로 사과 1알(6천원), 배 1알(1만원), 황태포(7천원), 시금치(500g·5천원), 무 1알(5천원), 도라지 한 봉지(5천원), 고사리 한 봉지(5천원), 대추(3천원), 밤(3천원) 등 9개 품목을 총 4만9천원에 구매했다. 1천원이 남았던 이 기자는 혹시나 떡국 떡을 1천원어치라도 살 수 있을까 기대하며 서문시장 곳곳을 다녔지만, 최소 3천원에 떡국떡을 판매한다는 상인들의 말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시장을 나섰다.
![]() |
◆오른 물가 체감…2년 전과 비교해 보니
영남일보는 2년 전에도 취재진이 5만원으로 이들 3곳 전통시장에서 장보기를 했다. 당시에도 위원회의 규칙에 맞춰 물품을 구매했는데, 구색을 갖추는 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올해도 같은 방식으로 시장을 방문한 취재진은 불과 2년 만에 크게 오른 물가를 실감했다. 오름세를 가장 크게 느낀 품목은 '과일'이었다. 서문시장의 경우 2년 전만 해도 사과 3개 1만원, 배 1개를 3천원에 구매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이상기후 등으로 과실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올해는 비슷한 품질의 사과 1개 6천원, 배 1개를 1만원에 구매했다. 2년 전 사과와 배가 3천원대 가격을 형성했던 것과 비교하면 2~3배가량 오른 셈이다.
다른 시장의 사정도 비슷했다. 2년 전 칠성시장에서 구매한 사과는 5개에 1만원이었지만, 올해는 1개에 7천원이나 했다. 2년 전만 해도 칠성시장에서는 사과 1개를 2천원으로 구매할 수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무려 3.5배나 뛴 것이다. 그나마 포, 떡국떡 등 품목은 과일보다 가격 오름세가 크지 않았다. 3곳 시장 대부분 밤 가격은 5천원으로, 2년 전과 같았다. 떡국떡과 포도 5천~7천원 대로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했다.
이 탓에 과일을 구매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시장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칠성시장 과일가게 앞에서 만난 주부 최은희(여·47)씨는 "생각보다 과일값이 많이 올라 놀랐다. 예전에는 상자째로 사곤 했는데, 이제는 차례상에 올릴 사과 3개 정도만 사도 적은 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시장 상인들의 넉넉한 인심은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를 실감한 기자들에게 위안이 됐다. 서문시장에서 장을 보던 이남영 기자는 남은 7천원으로 밤과 대추를 사려 했으나 대부분 가격이 5천원 이상이어서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우연히 방문한 가게의 인심 좋아 보이는 사장님께 "7천원으로 밤과 대추를 사려는 데 돈이 모자르다"고 말씀드리자, 사장님이 "내가 도와주겠다"며 밤 10알과 대추 11알을 각 3천원씩, 총 6천원에 챙겨주셨다. 7천원을 내민 기자에게 1천원을 거슬러주시며 "1천원이나 남았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5만원을 들고 다니던 수습기자들이 만난 칠성시장·서남신시장 상인들은 "고생하니 고사리라도 좀 더 넣어주겠다"거나 서비스로 밤이나 감말랭이를 주기도 했다.
◆결론 '5만원 차례상 차리기 불가'
"그걸로는 택도없지 아저씨야 아이고…."
2년 전에도 영남일보 취재진은 대구 전통시장들을 방문해 같은 기준으로 차례상 차리기에 도전했다. 당시에도 5만원으로 차례상을 차리기가 쉽지 않다는데 의견이 모였지만, 올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장별로 구매한 물품들을 한자리에 모아봤는데도 '초라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3곳의 시장에서 5만원으로 장을 봤지만, 단 한 군데서도 위원회가 제시한 '설 차례상 간소화 표준안'을 맞출 순 없었다. 이 탓에 3곳의 시장에서 만난 상인 대부분은 "5만원으로 명절 차례상을 차릴 수 있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손사레치며 "절대 못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취재진이 서문시장 한 상인에게 같은 질문했더니, 옆 가게 상인들이 듣고는 깜짝 놀라며 취재진에게 "아휴 무슨 소리야, 절대 안돼요. 안돼"라며 달려오기도 했다. 취재진을 붙잡고 5만원으로 '절대' 차례상을 차릴 수 없는 이유를 5분이 넘도록 설명했다.
서남신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최혜숙(여·69)씨 역시 수습기자들의 똘망똘망한 눈을 바라보며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신문사 기자들이 신문을 안 보나 봐요"라며 농담을 건넸다. 이어 한참을 웃은 뒤 "예전에는 추석이나 설을 앞두면 예약 주문을 받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 예약이 뚝 끊겼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구경모·조윤화 수습기자

이남영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