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의 시와 함께] 윤혜지 '희고 흰 빛'

  •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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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10  |  수정 2025-02-10 07:08  |  발행일 2025-02-10 제21면

[신용목의 시와 함께] 윤혜지 희고 흰 빛
신용목 시인


모자가 머리를 움켜쥐었을 때

고개를 숙이고 해변에 가득한 돌을 골라냈다

닳은 돌일수록 온기가 있다

함부로 쌓지 않고 바다로 던져버린다

돌이 헤엄치는 모습은 무척 아름답다

꼬리에 영영 붙어 있을 흰 그림자

태초부터 그러하듯 빠르게

신은 여러분의 죄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곧장 잊어버리십니다 윤혜지 '희고 흰 빛'


어떤 매혹에 대해서라면 나는 '사로잡힌다'는 말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것처럼 나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 끈이 이 행성의 대기에 처음인 바람을 본떴거나 지구의 협곡을 흘러내린 첫 물줄기를 닮았다고 믿는다. 태초의 인간은 거기 사로잡혔을 것이다. 사로잡힘으로써 비로소 인간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매혹의 상속자들이다. 서로를 향해 닳아가며 그로부터 온기를 얻는 아름다움은, 그러나 고개 숙이고 골라내야 하는 '죄'였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단단한 대지에 쌓지 않고 출렁이는 바다에 내던진다. 돌조차도 흰 그림자를 달고 헤엄치게 만드는 '진짜' 우리는, 그렇게 사랑한다. '신의 손아귀'가 움켜쥔 모자에 짓눌리면서도 서로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로잡힘으로써, 비로소 '해방'된다.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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