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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
지난 3월, 우리 사회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또한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사회는 깊은 분열의 골짜기에 빠졌습니다. 3월은 희망이 사라지고 더 나빠질 것 같지 않은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산불로 검게 변한 대지와 탄핵 찬반으로 갈라진 사회는 마치 엘리엇이 묘사한 황무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생명력과 회복력을 알고 있습니다. 곧 잿빛 대지에서 첫 새싹이 돋아나고, 대지는 다시 꽃을 피울 것입니다. 하지만 탄핵으로 발생한 우리 사회의 깊은 양극화와 냉담함, 서로에 대한 악마화는 어떻게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요? 엘리엇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이 찬란한 4월을 잔인함으로 보내야만 할까요? 깊은 골짜기가 패인 황무지에 머물러야만 할까요?
탄핵 선고 공판에서 재판관은 정치권을 향해 관용과 자제, 협치를 촉구했습니다. 저는 관용과 자제에 우리 사회에 패인 골짜기를 메우고 다시 생명과 회복력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용은 서로 다른 의견과 존재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태도입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부상길 캐릭터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처음엔 속물적인 인간처럼 보였지만, 이면에 숨겨진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드러나며 가족과 다시 화해하게 됩니다. 관식이 부상길을 단죄하지 않고 기다렸기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가치관과 이념, 세대, 지역이 공존하는 복합체로서, 다양성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풍요로움과 역동성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정답만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견해가 공존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제는 관용과 맞닿아 있는 또 다른 가치입니다. 자제에는 언어와 판단에서의 절제가 포함됩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금명은 종종 부모님에 대한 감정적인 언어를 쏟아내고 후회합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되 상대방을 존중하는 언어 사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판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상대방에 대한 전체적인 판단을 내리곤 합니다. 이러한 성급한 판단을 자제하고 복잡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4월의 곡우(穀雨)가 그을린 대지에 새 생명을 심듯, 관용과 자제는 우리 사회에 화합과 치유를 가져올 씨앗이 될 것입니다. 엘리엇이 그린 황무지는 결국 생명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라는 구절에서 보듯 황량한 대지에서도 꽃은 피어납니다. 우리의 사회적 황무지 역시 관용과 자제라는 봄비로 적시면 새로운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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