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들은 왜 자연지진이라 주장했나

  •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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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17  |  수정 2025-04-17 07:04  |  발행일 2025-04-17 제23면
[기고] 그들은 왜 자연지진이라 주장했나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
지난 4월8일, 포항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 위자료 청구 항소심과 관련해 원고 측과 피고 측의 변론을 약 2시간 동안 거의 꼼짝하지 않고 경청했다. 이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부 등 대변한 피고 측 변호사 4명 모두가 1시간 30분 동안 포항 지진이 인간이 일으킨 '촉발지진'이 아니라 '자연지진'이라고 반복해서 주장했을 때였다.

왜 피고 측 변호인들은 "포항 지진은 자연 지진이다"라는 주장을 만고의 진리인 듯 변론할까? 이들은 민사 1심 재판부가 포항 시민 1인당 200만원에서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부정하는 변론에 10분도 채 할애하지 않았다. 또한 정부 조사단, 감사원, 정부 포항 지진 진상위원회, 그리고 1심 재판부와 검찰까지 가세해 촉발 지진으로 판단했음에도 그들은 과감하게 이를 전면 부정했다. 5개 기관의 조사와 수사 결과는 비과학적이라 신뢰성이 없다는 전제로 과감하게 전면 부정한 것이다.

자연 지진에 베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촉발 지진으로 인정할 경우, 1심 선고의 금액을 낮추거나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 선택에는 승산을 고려한 계산도 있을 것이다. 피고 측 변호사 중 일부는 이번 소송과 함께 포항 지진 관련 형사 재판도 맡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민사 고법 항소심에서 패소할 경우 형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계산에서 그들은 배수진을 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자연 지진이라고 강변한 주요 근거는 2023년 Geothermics 학술지에 발표된 A. McGarr 교수의 논문이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포항 지진이 14개월 전에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과 관련된 양산 단층대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포항 지진 발전소의 물 투입이 단층에 미친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다.

반면, 포항 지진이 포항 지열 발전소의 물 투입으로 인해 발생한 촉발 지진이라고 밝힌 학자들의 논문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와 유명한 국제 지진학 학술지에 게재됐다. 포항 지진을 자연 지진으로 분석한 논문이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되기 어려워 발표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한편, 포항지열발전소 건설 및 운영을 담당한 넥스지오컨소시엄 참여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지열발전소의 건설 부지를 선정할 때는 해당 지역의 활성 단층의 존재 여부는 물론, 반경 40~50㎞ 내에서의 지진 발생 이력을 검증하는 것이 기본 프로토콜이다. 따라서 포항 지열발전소에서 40㎞ 떨어진 경주 지역에서 5.8 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했기에 그들은 물 투입을 중단하거나 훨씬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또 2017년 4월 3차 물 투입으로 3.1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음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4차 및 5차 수리자극을 진행했고, 결국 이는 5.4 지진을 촉발시켰다.

이러고도 그들이 준수했다고 주장하는 지열발전소의 프로토콜을 제대로 실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정부 역시 능동적으로 감시하고 감독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이 힘들었다. 드러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재판부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 짐작은 가지만 입증할 수 없는 정황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혜안을 가진 재판관들이니, 믿고 기다리면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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