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진영논리로 편을 가르고 너는 누구 편이냐고 따진 뒤 우리 편이라 하면 무슨 말을 해도 용인하고, 다른 편이면 무슨 말을 해도 비판하는 한 진전은 없다. 완벽하게 흰색과 검은색인 사람은 극소수다. 나머지는 중간지대에 있다."(정관용)
(3) "사회적 대타협을 방해하는, 아니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못하도록 하는 첫 번째 방해물은 진영논리다. 진영론자들은 세상은 원래 좌우로 갈려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 아니면 진보일 뿐 그 중간은 없으며 제3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김장수)
(4) "진영은 본래 극, 군대 주둔 진지, 파벌·부족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공통점은 투쟁대오 또는 시민 이전 상태를 말한다. 이성과 대화, 도덕과 법률 이전의 가족과 혈연, 명령과 복종의 단계나 상태를 말한다…대한민국을 망칠 진영국가, 즉 대한진국(大韓陣國)의 지속과 고착만은 막아야 한다."(박명림)
(5)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자들은 모든 문제와 갈등을 오로지 진영논리 및 그것과 연결된 권력과 이익의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그 진영논리는 보수 대 진보의 이분법으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하거나 새로운 쟁점들을 사태에 충실하게 관찰하고 결정하는 것을 방해하고 억누른다."(김진석)
이상 소개한 다섯 전문가들의 견해는 진영논리의 문제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심각하다는 걸 시사해준다. 진영논리는 논자에 따라 그 정의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넓게 보아 논리·이성보다는 자기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사고방식 정도로 이해하기로 하자. 여기서 이익은 심리적 만족감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나는 과거에 진영논리에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그게 멀쩡한 사람을 버려놓더라는 걸 절감한 끝에 비판자로 돌아섰다. 중도파나 무당파와는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건 차분한 대화가 가능하지만, 진영 충성도가 높은 사람과는 정치적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수없이 경험했다. 무슨 교주를 섬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광신의 정열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지 난감하게 여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어느 진영엔가 소속돼 있다. 크게 분류해보자면 민주당 진영과 국민의힘 진영으로 나눌 수 있겠다. 진영 참여도와 열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자신이 어느 진영에 속해 있다는 기본적인 정체성은 유지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지적했듯이, "소속감은 소외와 고독감에 가장 강한 해독제를 제공한다"는 걸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나는 소속 진영이 없이 무소속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인 세상을 꿈꾼다. 자신의 진영 위주로 생각하는 내로남불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조직에서건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기준에 따라 남들이 하기를 꺼려하는 직언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국민의힘에서 계엄에 반대하고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데 앞장서 박해를 받은 국회의원 김상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김상욱은 지난 5월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민주당의 영입설을 두고 "개인적으로 친한 민주당 의원들이 사적으로는 '같이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주셨고 저를 좋게 생각해 주시는 거니까 감사한 마음"이라며 "우리 당에서 자꾸 나가라 해서 오갈 데 없는 데도 좋은 마음을 주시니 감사하다. 얘기는 나눴었다"고 시인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보수가 아닌 수구화된 모습인 반면, 민주당이 오히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보수 가치에 충실하다면서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야권의 원로인 전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는 전날인 4월30일 같은 방송에 출연해 "김상욱 의원이 옮기는 거는 그렇게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며 "그동안 거기서 고군분투했는데, 그게 마치 무슨 민주당에 가기 위한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상욱 의원 같은 경우 그 당에서 아주 감동적인 역할을 했는데, 저렇게 극으로 가는 그 당을 제대로 하려고 더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거기서 혼자 여기로 오면 그쪽은 더 저쪽으로 가라고" 하게 되는 것이라며 "자기가 속했던, 자기를 뽑아줬던 그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김상욱이 민주당으로 간다고 해도 비판적으로 볼 생각은 없지만, 꼭 어느 한 진영에 속해야만 하느냐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탄핵 정국에서 파면당한 대통령 윤석열과 그를 싸고도는 친윤 정치인들을 향해 비판적인 주장을 했던 다른 유명 보수 정치인이나 논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진영에 구애받지 않는 공정성에 있어서 보수가 진보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재명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건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물론 불타는 우국충정(憂國衷情)으로 오직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기 위해서라는 걸 믿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는 정치인은 전무하다는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앞서 소개한 유인태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공익을 소중히 여기는 모든 분들께 묻고 싶다. 특정 진영에 속하지 않으면 죽는가? 지금처럼 양극화된 정치판에선 특정 진영에 소속되지 않으면서 활동하는 독립군이 공익을 위해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민주당이 최근 발족시킨 대선 선거대책위원회는 선거대책위원장만 22명에 달할 정도로 큰 조직이다. 총괄선대위원장만 7명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인해전술인가?"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하면서 강하게 내세운 게 '통합'이라는데, 한 진영 내의 통합은 상대 진영과의 대결 구도를 격화시킬텐데 그게 궁극적으로 무슨 통합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두 거대 정당을 지배하는 경직된 진영논리를 깨는 게 전체의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느 특정 진영에 속하지 않더라도 그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고 소외감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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