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왕건의 시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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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03 18:48  |  발행일 2025-07-03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943년 7월4일 고려 태조 왕건이 붕어했다. 어떤 기록에는 승하 날짜가 7월9일로 나온다. 전자는 율리우스력에 따른 것이고, 후자는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음력으로는 5월29일이다. 왕건은 셋 중 7월9일이 가장 아니라고 생각할 듯하다.


그레고리력은 1582년부터 시행되었다. 크리스트교 중 정교 국가들은 그레고리력을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1918년, 그리스는 1923년까지 율리우스력을 사용했다. 역법에도 종교 논리가 작동했음이 확인된다.


물론 서양종교와 무관한 왕건이 그런 인식에서 7월9일을 거부할 일은 없다. 본인 생전에 그레고리력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냥 음력 또는 율리우스력의 사망일을 수용할 터이다. 그런데 왕건과 직접 관계되는 시간이 대구에 있다.


927년 동화사 아래서 후백제 군에 대패한 왕건은 구사일생으로 도망친다. 금호강을 건너 앞산으로, 다시 왕선고개와 성주를 거쳐 개성으로 달아난다. 이 동수대전에는 소설화할 만한 요소들이 부지기수다. 당사자 왕건은 어느 대목에 가장 관심을 기울일까?


당시 동화사 승려들은 견훤을 지원했다. 후백제 인근의 성주 사람들은 오히려 왕건을 지지했다. 왕건이 앞산 왕굴에 숨어있을 때 거미들이 무수한 줄을 쳐서 입구를 막아주었다. 투항한 견훤이 왕건 군의 선봉에 서서 후백제를 공격했다.


대략 예시해 보았지만, 모두가 소설이 되고도 남음직한 소재들이다. 흥미진진한 인과 관계가 도출될 사건들이고, 가치 있는 주제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시로도 형상화가 가능하므로 대구 문인들이 두루 관심을 기울여볼 만하다.


대구 출신 소설가 현진건은 1926년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통해 "조선문학인 다음에야 조선의 땅을 든든히 디디고 서야 한다.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한다"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자신의 현장을 문학으로 형상화하라는 말이다.


현진건은 첫 소설 '희생화'의 남자 주인공을 대구사람으로 설정했다. 대표작 중 한 편인 '고향'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로 시작한다. 후기 대표작 '신문지와 철창'의 무대가 대구라는 사실은 인물들의 사투리가 증언해준다.


왕건을 예로 '향토의 문학화'를 주창해본다. 국채보상운동, 조선국권회복단, 광복회, 1946년 10월, 2·28 등등 무수한 1급 제재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비슬산과 일연 제재 장편을 집필 중이라며 걸려온 근래의 전화는 오랜만에 만나는 까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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