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속에 숨겨진 역사와 문화 .62] 리기다소나무와 수입 품종

  • 입력 2006-03-09   |  발행일 2006-03-09 제28면   |  수정 2006-03-09
원산지보다 역사적 의미가 더 중요
[나무속에 숨겨진 역사와 문화 .62] 리기다소나무와 수입 품종

소나무를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잎을 세는 일이다. 한국의 소나무는 잎이 두 개지만, 리기다소나무는 세 개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세잎소나무'라 부른다. 그러나 잎을 세 개 가진 소나무 중에는 백송도 있기에 헷갈릴 염려도 있다. 좀 더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리기다소나무의 줄기가 우리나라 소나무에 비해 매끈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리기다소나무의 한자 이름은 미국삼엽송(美國三葉松), 강엽송(剛葉松), 경엽송(硬葉松) 등이다. 미국삼엽송은 미국에서 건너온 잎 세 개의 소나무라는 뜻이다. 강엽송과 경엽송은 모두 잎이 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학명의 리기다(rigida)는 '딱딱한'이라는 뜻이다. 리기다의 '다(da)'는 여성형을 의미한다. 리기다소나무는 고대사회에서 대부분 여성형으로 바라보았지만, 사회가 남성 중심으로 바뀌면서 나무 이름도 점차 남성형으로 변했다. 나무 이름도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

리기다소나무는 1907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한국에 리기다소나무를 들여온 사람은 일본의 우에키호미기(植木秀幹)이다. 우에키는 한국 임학계의 선구자이자 한국인으로는 처음 일본에서 임학박사를 받은 현신규 박사의 수원고등농림학교 시절 은사이다. 우에키는 한자 이름마저 나무를 심는다는 식목(植木)이다.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 리기다소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때론 우리나라 소나무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이 리기다소나무를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리기다소나무는 아까시처럼 산에 나무가 없던 시절 사방조림용으로 많이 심었기 때문에 현재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리기다소나무는 우리나라 소나무보다 빨리 자라고 잎이 딱딱하지만 목질은 우리나라 소나무보다 단단하지 않다.

정호승 시인처럼 '리기다소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무척 아름답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기다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했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솔가지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가끔 식물학자 혹은 나무에 관심 있는 사람 간에 수입 품종의 가치를 두고 입씨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찬성과 반대론자 간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그럴 듯한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지 논쟁에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수입 품종에 대한 역사적인 관심과 나무의 터전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어느 땅의 나무이건 간에 처음부터 존재한 나무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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