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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8시쯤 칠성시장 해멍 포차촌 서편 거리에 형성되는 민물장어촌 전경. 현재 14군데가 모여 있다. |
# 장사도 이모작 하네
대구 칠성시장은 하루에 두 번 장이 섭니다.
그게 꼭 '이모작' 같기도 하고. 크게 주·야간반 상인이 판을 쪼갭니다. 물론 대다수 상인들은 주간반이지만 오후 8시쯤부터 야간반이 활개칩니다.
지난 19일 밤 11시30분 신암교 칠성고가도로 네거리 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네거리의 서쪽 거리로 들어섰습니다. 행인은 거의 없고 주간에는 물건을 내릴 수 없는 남해, 충무, 마산 등지에서 올라온 해산물 수송차량이 속속 하역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장 내 도로망이 협소해 심야에 하역작업이 집중됩니다. 유골함만한 스티로폼 용기와 그물망에 담긴 홍합이 노변에 수북하게 쌓입니다. 화물차 기사가 운전석에 앉아 그걸 지키고 있습니다. 자정 무렵 멍게, 해삼, 장어 등 해산물이 먼저 들어오고 연이어 각종 농산물, 닭·두부·어묵차들이 들어옵니다. 오전 4~ 7시에는 인도를 가득채우는 순발력 절정인 할매 채소부대가 '번개시장'을 형성합니다. 그들까지 사라지면 그때서야 야간반의 자취는 완전 사라지고 주간반 정규수업이 개시됩니다. 오후 6시면 주간 상인들의 활동은 끝이 납니다.
# 해멍 할매는 자기 이름을 싫어해
칠성고가도로 네거리 서편에서 100m쯤 가면 네거리가 나옵니다. 그 모퉁이와 북측 길 양편에 20여 군데의 해멍(해삼과 멍게) 전문 포차촌이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습니다. 30여년전부터 형성된 포차촌 원조급 할매들의 이름을 적어봅니다. 꼭지집의 윤갑준 할매(69), 예수집의 김분자 할매(70), 기주집의 민선기 할매(66), 희준이집의 이분조씨(55), 순이집의 최순이 할매(66). 모두 똘똘 뭉칩니다. 매월 20일엔 계모임을 하고 매주 첫째 일요일에는 칼같이 놉니다. 호객행위도 서로를 위해 자제하죠. 포차촌과 민물장어촌, 모두 34집의 권익을 옹호하는 이광식 번영회장(59)이 디지털 카메라로 호객행위 장면을 찍어 구청에 제보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해멍 할매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자식 이름만 챙깁니다. '한국발 모정의 최후 보루' 같습니다. 상호도 자식이름, 잔칫집에 돈을 낼 때도 자식 이름을 적습니다.
처음 방문한 멍게나라. 둘째 아들 이름을 따서 '기주집'으로 불립니다. 민씨 할매는 이 바닥에서 안해 본 장사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포차촌을 차렸습니다. 기주집이 너무 한산해 휑뎅그렁했습니다. 도로 위에 비치파라솔 용 빨강 식탁 11개가 놓여 있습니다. 접시 대신 노랑 플라스틱 용기에 멍게와 해삼을 썰어올립니다. 하절기엔 쉬 물러지기 때문에 밑에 얼음을 깔아놓습니다. 그 옆에 홍합이 놓입니다. 초창기에만 해도 홍합은 3천원에 팔린 주메뉴인데 경쟁이 치열해 이젠 서비스 안주로 전락했습니다. 마니아들은 홍합보다 그 국물을 더 좋아합니다. 초장에 한 점 찍어 씹어먹었습니다. 다른 식당과 달리 쿰쿰한 냄새도 나지 않고 육질도 풋풋해 과연 칠성동 해산물이 시원하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초창기엔 곁반찬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젠 방울토마토, 번데기, 바다고디, 땅콩, 오이 피클, 오이, 당근 등이 해멍을 둘러쌉니다. 초창기엔 천막도 없었습니다. 13년전 희준이집이 처음으로 자바라(접이천막)을 선보입니다. 심지어 정식 탁자도 없어 앉은뱅이 목욕탕 의자를 사용했는데 차츰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 등을 배려해 정식 식탁을 갖추게 됩니다.
# 오전 5시30분전에 포차 영업은 끝나
포차들은 오후 8시 어름 문을 열었다가 오전 5시30분 전에 자리를 비워줘야 합니다. 상점 앞 도로상에 포차를 차리기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날 때는 주간반 상인을 배려, 깨끗하게 물청소하고 사라집니다. 임차료를 내지 않고 그 자리를 무상으로 사용하니 당연히 그래야 하죠. 가끔 네거리 모퉁이에 취객이 실례하고 간 흔적까지 락스로 지워야 합니다. 대다수 포차 주인들은 화물차에 포차를 실어 옮깁니다. 기주집은 아직 포차를 이동할 화물차가 없습니다. 거기서 60m 떨어진 창고까지 손수 옮깁니다.
해멍은 1만~2만원. 그밖에 개불, 굴, 과메기, 참소라, 산낙지, 전복회, 산오징어, 왕새우구이 등 각종 제철 해산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선 포차부대를 '옥에 티'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매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오전 1시에 만난 희준이집 이 사장이 '포차예찬'을 합니다. "예전 포차가 없었을 적에는 도둑이 들끓는 그야말로 우범구역으로 전락했어요. 이제 포차가 오전 5~6시까지 지키고 있으니 좀도둑들이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켜고 있으니 칠성시장은 24시간 활기차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대외 이미지 제고에도 일조합니다. 서로서로 이익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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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절기 칠성시장 포차촌의 명물 멍게와 해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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