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지역 전통시장 숨은 먹거리 (4) 칠성시장 돼지골목

  • 입력 2007-08-31   |  발행일 2007-08-31 제37면   |  수정 2007-08-31
"고사나 굿판에 올리는 돼지머리 거의 이 골목 거죠"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지역 전통시장 숨은 먹거리 (4) 칠성시장 돼지골목
4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칠성시장 불고기맛의 원천은 연탄불에 탄 돼지기름 냄새.

시장에 도착하니 여우비가 내립니다.

족발골목 안은 이내 증기탕처럼 변합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사방으로 소통되지 않고 고입니다. 그 더위를 굳이 매머드 에어컨으로 식힐 필요도 없을 듯 싶네요. 기름기 머금은 길바닥을 걸어갑니다. 그래요, 여긴 어설픈 청소가 되레 '분탕질'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냥 차근차근 쌓이는 '더께 미학'이 빛을 발합니다. 주인이 움직이는 공간은 막장 탄부의 이빨처럼 반짝거리고 다른 데는 어두컴컴합니다. 환기구 근처엔 기름층이 고드름처럼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전통시장이 현대화됐다고 하지만 아직 대형마트에 비할 바는 못되지요. 하지만 전통시장은 여전히 마트가 갖지 못한 파워를 갖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의 매력포인트는 '우툴두툴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매끈하지 않고 조금 투실함이 깃든, 반들반들한 이조백자가 아니라 옹기처럼 농현(弄絃)스러운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한 도시엔 '수정' 같은 공간도 있어야 하지만 '돌멩이' 같은 곳도 있어야 합니다. 광장과 골목이 교직되어야 합니다. 시장의 무질서, 그게 언젠가 질서보다 더 비싸게 대접받는 날이 올 겁니다. 하지만 마트 세대들은 칠성시장의 아우라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냥 "아, 거기에 시장이 있죠" 정도로 인식합니다.

칠성 불고기에는 우동 없고 북성로에는 있다

# 돼지 불고기를 찾아서

돼지 불고기는 족발골목 안에 있습니다. 이 골목은 해멍(해삼과 멍게)·장어거리 바로 남쪽에 서있습니다.

이번 주엔 거길 기웃거렸습니다. 돼지국밥, 돼지 불고기, 족발, 돼지 껍데기, 돼지머리…. 서성로 돼지골목, 봉덕·명덕·중앙시장 국밥골목, 남문시장 돼지보쌈골목 등도 있지만 돼지고기에 관한 한 칠성을 따라 올만한 데가 없습니다.

아참, 한 가지 바로 잡아야 될 사항이 있습니다. 북성로 포장마차 돼지불고기가 원조(1970년대초 대구은행 앞 돼지 불고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보다 10여년 전부터 돼지 불고기가 칠성시장 내에서 태어난 걸 확인했습니다.

60년대 대구 향토음식의 백미는 역시 불고기였습니다. 대구 불고기 붐은 어디서 발원했을까요. 바로 중구 계산동 1가 대동면옥 바로 옆 골목 안에 있는 땅집(1990년 폐업)입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요리를 배워 광복 직후 대구로 온 박복윤씨(82)가 1957년 오픈합니다. 이 붐은 동산동으로 건너간 숯불갈비 전문 진갈비(대표 진홍렬)로 옮겨갑니다. 불고기 붐은 칠성시장에서도 피어납니다. 누가 누구에게 영향준 지는 아직 정확지 않습니다. 단지 43년 전 생겨난 단골식당이 족발골목 안에서 계속 영업을 하고 있으니 불고기와 관련 단골의 지구력이 가장 돋보입니다. 단골 주인은 한번 바뀌고 현재 2대 사장 김명선씨(60)가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김씨는 35년전부터 석쇠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종일 석쇠를 두드리고 집게로 고기를 다지다보니 이젠 어깨 근육이 만신창이가 돼 평일에는 도저히 일을 못하고 주말에만 나옵니다.

화덕 주위는 기름꽃이 만발했습니다. 돼지 기름이 연탄불에 떨어지면 이내 한 치 높이의 화염이 올라 옵니다. 그 불기운이 석쇠 위 고기에 들러붙어 '화근내(탄 냄새)'를 냅니다. 너무 타면 안되고 적당히 훈증되어야 제맛이 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계속 석쇠를 뒤집습니다. 그 맛은 카페인 못지않게 중독성이 있어 며칠만 안 먹어도 좀이 쑤십니다.

현재 족발골목에는 돼지불고기 집이 2군데(단골과 함남식당)밖에 없습니다. 60년대초 친구간인 유말선·김분선 할매가 동시에 돼지 불고기를 선보였고 그 집이 잘되자 순식간에 10여군데로 불어났지만 나중에 거의 사라집니다.

함남은 식육점으로 출발해 나중엔 식육점은 사라지고 돼지 불고기와 족발집을 새끼칩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대구로 온 김복만 할머니가 꾸려간 식육점을 돼지 불고기로 이어받은 건 이정순 할매(70), 다시 그 딸 박주영씨(43)한테로 가업이 이어졌습니다. 단골식당은 원조답게 40년전 설비 그대로라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돼지 불고기 한 접시 3천원.


# 족발과 돼지머리 이야기

현재 족발 골목에는 평화육남매, 영화사, 할매, 칠성, 성주, 모정, 맛있네, 돼지, 황도, 삼영, 대동, 장안, 경산, 북문, 우리 등 19군데의 족발집이 있습니다. 족발 골목은 돼지수육과 불고기 시대가 끝나면서 20여년전부터 형성됐습니다. 족발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단족으로 불리는 부위는 10여개의 뼈로 이뤄진 어른 주먹만한 발이고 왕족은 발을 제외한 발목에서 무릎까지 뼈를 의미합니다. 단족은 2개 5천원선, 왕족은 1만~1만4천원선. 두루치기용 돼지 껍데기는 1㎏에 2천원.

족발 아줌마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대목은 바로 '삶기'입니다. 너무 삶으면 살이 흘러내려 상품성이 없고 덜 삶으면 썰기 힘들고 씹는 맛도 격감합니다. 이들은 2시간30분쯤 삶은 뒤 육감적으로 끄집어냅니다. 한눈 팔면 재료를 버리게 됩니다. 소스는 보통 10여 가지 들어가고 꺼낸 뒤 냉장고에 30분쯤 넣어둬야 잘 썰립니다. 현재 수입산은 거의 단족이고 왕족은 거의 국내산이라 보면 됩니다.

다음은 공포의 썰기. 아마추어는 칼을 줘도 못 썹니다. 그것도 요령이 있다고 하는데 최소 3개월은 배워야 장자에 나오는 백정인 '포정'처럼 뼈와 뼈 사이를 헤집어면서 능수능란하게 살점을 발라낼 줄 압니다. 왕족의 경우 먼저 살이 적은 부위부터 칼집 내 벗겨냅니다. 졸깃하기는 단족이 왕족보다 한 수 위, 왕족의 경우 종아리 살보다는 촛대뼈에 붙은 살이 더 맛있죠.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지역 점술가들의 80%가 이 골목 돼지머리를 고집합니다. 다른 데보다 싸고 굿발도 더 받는다는 속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월말·정월 보름 어름엔 돼지머리가 품귀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 개 가격은 1만5천원선. 어느 집이 맛있냐고요. 맛은 거의 대동소이하니 손님이 덜 드는 곳을 배려하는 것도 전통시장 살리는 일환이겠죠.

◇  칠성과 북성로 불고기 차이점

 칠성 돼지 불고기에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담긴 우동이 없습니다. 우동 대신 공기밥을 냅니다. 또 한 가지 차이점은 굽는 방법. 북성로는 애벌구이를 해뒀다가 손님이 밀어닥치면 재벌구이해서 내보냅니다. 칠성 불고기는 애벌구이를 하지 않습니다. 공통점은 연탄불을 사용하고 석쇠를 치면서 기름불을 내 화근내를 유도한다는 것.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지역 전통시장 숨은 먹거리 (4) 칠성시장 돼지골목
19개 업소가 모여있는 칠성시장 족발골목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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