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지역 전통시장 숨은 먹거리 (7)-청도 풍각장 소머리국밥

  • 입력 2007-10-12   |  발행일 2007-10-12 제37면   |  수정 2007-10-12
혀보다 가슴으로 먹는 추억 한 그릇!
[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지역 전통시장 숨은 먹거리 (7)-청도 풍각장 소머리국밥

# 국밥, 장터 억척녀들을 살렸다

장터 국밥집(이하 장국).

메이크업 하지 않은 처녀 얼굴 같습니다. 꾸밈 없지만 푸들거리는 생명력이 돋보입니다. 여기가 한국 외식의 출발점입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 외식사도 국밥의 무한응용아닌가요. 진한 육수 맛을 아는 촌로들은 요즘 국밥은 국밥도 아니라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물도 옛물이 아니고, 고기도 옛고기가 아니고, 농작물도 예전 게 아니니ㅡ 맛도 예전 맛이 될 수 없겠죠.

장국은 맛 이외는 모든 게 '대충'입니다. 그땐 소유권 개념이 희박해 장마당에 가마솥 하나 걸면 막바로 장사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영업허가도 필요없습니다. 식탁도 의자도 필요없습니다. 가마니 몇 장이면 됩니다. 서비스·인테리어·홍보 관념도 희박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을 친인척 대하듯 했습니다. 살가운 인사가 오고갑니다. 그러니 식구 생각하듯 음식을 만들었겠죠. 허기만 면하면 되니 곁반찬도 필요없습니다. 바쁘면 그냥 서서 먹었습니다. 이미 국밥 안엔 곁반찬 될만한 채소와 푸짐한 고기가 밥과 함께 믹싱돼 있으니 그것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장국도 시대의 산물입니다. 약속이나 한것처럼 광복 직후에 가장 많이 생겨나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국끓이는 장터 할매들이 점차 큰돈 만지는 외식전문가로 자리 잡습니다. 그들이 훗날 도심으로 건너와 숱한 국밥 브랜드를 창출합니다. 동아쇼핑 옆 염매시장과 약전골목, 그러니깐 대구읍성 남문(영남 제일관) 앞에 매일 아침 장국 난전이 섰습니다. 일제 때만 해도 '따로국밥'은 생겨나지 않았고 '대구탕(일명 대구식 육개장)'이 더 유명했습니다. 참, 육개장은 서울이 아니라 대구가 발상지란 걸 몰라셨죠. 일제 때 나온 '별건곤'이란 잡지책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평생을 장터에서 보낸 할매와 중년의 아낙네들, 종일 좌판 앞에 앉아 있습니다. 몇몇은 졸고 있습니다. 반듯하게 차려입은 도시인들이 순간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자는 할매를 깨워 적선하듯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줍니다. 훈훈하다고 해야 할 지 안타깝다고 해야할 지. 하여튼 장터 할매들, 가난 때문에 거리로 나와 아이들 모두 다 출가시킨 '억척녀'들입니다.

# 풍각장 소껍데기 국밥, 전국 음식투어 코스로 각광

그런 국밥집 하나를 청도군 풍각면 풍각시장 한 귀퉁이에서 만났습니다.

가창댐을 지나 헐티재를 넘고, 40여분만에 도착한 청도군 풍각면 송서3동 풍각시장(1·6일장).

이 시장에서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까지 50여년째 명맥을 잇는'번지없는 소머리 국밥집'을 찾았습니다. 장사람들에겐 '소껍데기 국밥'으로 통용됩니다.

헐티재와 팔조령 길이 깔리고 난 뒤부터 풍각장 찾는 대구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집은 추억의 장국 원형을 지키고 있어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투어식으로 찾아옵니다.

이집은 곰탕 계열입니다. 사골로 기본 육수를 받고 정육과 소양 등 각종 내장을 갖고 감치는 육즙을 빼서 섞습니다. 그래서 육수에 기름이 농밀하게 고여 있습니다. 그런데 느끼하지 않습니다. 여긴 뼈보다는 고기에 포인트를 둡니다. 하지만 설렁탕류는 '뼈의 미학'이 두드러지죠.

현재 풍각장에 국밥집이 두 군데 있습니다. 두 곳 다 간판이 없습니다. 한 곳은 사람이 붐비고 다른 곳은 적습니다. 붐비는 곳은 1995년엔 82세로 작고한 김딸막 할매의 맏며느리 김소쌍분씨(54)와 남편 강용달씨(67)가 지키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전국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다른 장국집과 다른 건 무말랭이 같은 소머리 껍질을 잘 썰어 넣어준다는 사실. 5일장이라지만 부부는 늘 고기를 장만해둬야 합니다. 장날에는 오전 2시부터 국을 끓이고 오전 10시~ 오후 2시에 가장 붐빕니다. 평소에는 소머리 껍질을 벗겨내 부드럽게 장만해야 합니다. 털을 벗기고 펄펄 끓는 물에 몇번 넣어 부드럽게 해줍니다. 돼지고기 장만하기보다 더 힘드는 모양입니다. 예전 시어머니 때는 풍각시장 옆 우시장에서 고기를 갖고 왔습니다. 초창기엔 썬 파와 양념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소머리는 모두 3차례 솥에 들어갔다 나옵니다. 처음엔 물과 소머리, 내장 등을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에 5시간 고아냅니다. 건져내서 고기는 식혀두고 거기서 나온 육수를 사골과 섞어 백철솥에 넣고 재차 3시간 가스불로 끓입니다. 마지막엔 또 다른 백철솥에 이 육수를 분리해 담아 종일 약한 불로 관리합니다. 내장류는 소양, 곱창, 허파 등 5가지입니다. 이집에선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정종과 생강 등도 넣지 않습니다. 미원통도 없습니다. 반찬은 깍두기 딱 하나뿐. 육수가 진해 평일에도 외지에서 국을 사러 옵니다. 사람들은 이집에 와서 3번 놀랍니다. 싼 가격(한 그릇 3천원)에, 푸짐함에, 그리고 맛에. 조만간 장터 옆 집을 개조해 2호점을 낼 계획인가 봅니다. 촌로들에겐 1천~1천500원짜리 국도 판다고 하네요. 초창기부터 사용해 검은 기름때 묻은 국자 담는 그릇도 골동품처럼 보입니다.

[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지역 전통시장 숨은 먹거리 (7)-청도 풍각장 소머리국밥
광복 직후 가난을 면하기 위해 장터에 뛰어들었던 아낙네들이 가장 쉽게 만들었던 소머리 국밥. 이젠 그 명맥을 잇는 시골장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
[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지역 전통시장 숨은 먹거리 (7)-청도 풍각장 소머리국밥
'번지없는 소머리국밥집'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각장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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