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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비가 따로국밥에 반했다고 하면?
"요즘 가수 비가 따로국밥 없인 아침 식사를 못한다고 하더라고."
"따로국밥이 뭐지?"
"대구 십미 중 대표격으로 6·25 때 대구에서부터 유행했다지. 최근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대사에 위촉된 비가 대구 왔다가 졸지에 그 맛에 반했던가봐. 사흘이 멀다하고 서울로 국을 공수해 먹는 걸 안타깝게 생각한 비의 매니저가 조리사 한 명을 차출, 매일 아침 집에 와서 국밥을 끓이게 한다나봐."
한 라디오 방송 출연자 사이에 오간 대화를 들은 비의 골수팬 A, 즉시 대구로 차를 몰고 내려갑니다. 수소문해 찾아간 대구의 한 식당 벽엔 비의 자필 사인이 코팅돼 부착돼 있습니다. A는 굳이 비가 먹은 뚝배기에 국을 담아달라고 간청합니다. 비가 먹은 뚝배기라? 주인도 반짝 아이디어가 솟구칩니다. 며칠뒤 주인은 비가 먹은 뚝배기와 식기를 별도의 진열장 안에 전시해둡니다. 다 홍보마케팅 차원이죠. 그 국밥집은 졸지에 '비의 국밥집'으로 소문납니다. 비가 왔다고 하니 평소 따로국밥에 거부반응을 보이던 10대들까지 그 집을 관광명소처럼 찾아듭니다. 비가 맛있다고 하니 다른 손님들도 무조건 맛있다고 여깁니다. 비의 국밥집은 모처럼 큰 돈을 만지게 됩니다.
사실이냐고요?
아닙니다. 제가 그럴 듯하게 꾸며본 얘기입니다.
전국 전광판에 동시다발적으로 따로국밥을 광고하는 것과 비가 그 음식에 매료됐다고 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영향력이 있을까요. 저는 후자라고 봅니다. 그래서 요즘 신장개업 식당 주인들은 각종 인맥을 동원해 유명인들을 자기 식당에 모셔 무료시식회를 갖고 덕담 들어간 사인도 재빨리 챙겨둡니다. 일종의 신종 상술이죠. 유명인의 사인은 바로 매상으로 연결됩니다. 음식전문가가 "이 집 음식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보다 '인기연예인의 단골집'이라고 소문내는 게 더 효과적일 겁니다. 하지만 비의 매니저는 쉽게 특정 업소에 대해 힘을 실어주지 않을 겁니다.
하여튼 '소문 맛'이 위력을 발휘합니다. 요즘 식당 주인들은 맛 못지않게 상호도 맛깔스럽게 짓습니다. 기찬 이벤트도 잘 벌입니다. 동창·동호회 관계자들을 통해 '입소문'도 냅니다. 전주 비빔밥 관계자들은 초대형 용기에 수천인분의 비빔밥을 동시에 빚어 행인들에게 나눠주며 비빔밥 위상을 제고시킵니다.
이번에 대구시도 지난해 엄선한 대구십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시식홍보행사를 가졌습니다. 그 현장에 가봤습니다.
# 대구십미에 대한 외국인들의 첫 반응
지난 12~15일 대구에서 제46회 동양·동남아 라이온스 대구대회가 열렸습니다.
과연 각국의 회원들이 대구십미에 어떤 반응을 보일 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대구십미에 대해 탐탁지 않은 반응도 있었습니다.
"한 지역을 대표하려면 폼도 나고, 그럴 듯 해야 하는데 대구십미는 일견 간·분식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인들은 그런 음식을 절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13일 낮 12시 개막식이 열리는 대구월드컵경기장 VIP라운지. 거기에 250명의 VIP 회원들이 북적거렸습니다. 대구시는 인터불고 호텔 조리부에 의뢰해 대구십미를 일반 양식 음식과 함께 세팅을 했습니다. 대구시는 사전에 대구십미 선정이유와 각 음식의 맛과 관련 정보를 영·일·중국어로 번역해 팸플릿으로 제작, 회원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약전·동인동 찜갈비 골목에서의 야간 맛기행에 아쉬움이 많았던 일부 회원들은 대구십미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돼 있었습니다. 라운지에는 예상보다 많은 300여명이 찾았습니다. 통역 도우미 6명도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행사장에선 화기반입 금지로 인해 즉석요리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 전에 대구십미 취급 업소를 통해 미리 음식을 확보했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로국밥과 논메기매운탕 국물은 시간이 갈수록 걸쭉해져 제맛이 덜 났고, 납작만두·소막창 등은 습도유지가 안돼 가장자리가 딱딱해졌습니다. 국수는 너무 불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저는 3명의 인터뷰 대상 회원들에게 절대 '접대성 맨트'를 하지 말것을 당부했습니다.
직전 국제이사였던 뉴질랜드 출신 로널 랙스턴(60)은 "호텔 음식에 비해 시각적 정돈미는 떨어지지만 지역의 특성이 담겨있는 것 같아 관심 갖고 먹었다. 특히 누른국수와 소막창, 찜갈비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나고야에서 온 마사카추 나카큐사(70)는 "딸이 국제결혼을 해 한국에 살기 때문에 갈수록 매운 맛에 매료된다"면서 "특히 복어 불고기는 물에 씻어 먹을 정도로 맵지만 분명 매력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대만에서 온 첸 여사(53)는 "납작만두는 중국식 만두와 비슷해 인상깊었고 특히 따로국밥과 찜갈비가 맛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음식은 거의 동이 났습니다. 외형상으론 성공적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은 처음 보는 음식이라서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었을 겁니다. '타국의 음식'이란 너나없이 다 그럴 겁니다. 저들이 십미를 여러 번 맛보면 그제서야 맛을 제대로 평가할 겁니다. 누구든지 앞으로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을 대상으로 시식회 할 때 홍보물에 만족하지 말고 각 음식의 조리법과 탄생 배경 등을 먼저 알려준 뒤 시식하도록 유도하세요. 그럼 그 음식에 대한 더 강력한 인상이 뇌리에 각인될 겁니다.
외국인 대상의 이번 대구십미 홍보·시식회, 반절의 성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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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제46차 동양·동남아 라이온스 대구대회에 참석한 300여명의 VIP 회원들이 대구월드컵경기장 VIP라운지에서 대구십미를 시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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