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음식박람회 이야기(상)

  • 입력 2007-11-02   |  발행일 2007-11-02 제37면   |  수정 2007-11-02
"식당 주인님, 음식축제 좀 도와주시죠?"
[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음식박람회 이야기(상)
2006년 대구음식박람회 조각왕 선발대회 학생부 대상 작품.

#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음식축제

발에 차이는 게 '음식축제'입니다.

전국 223개 시·도·군마다 음식축제가 하나씩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만큼 우리 삶에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얘기겠죠.

하지만 국내 음식축제는 아직 역사가 일천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음식축제로 알려진 건 솔직히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물안 개구리 같은 축제'라고나 할까요. 거의 10년 미만입니다. 생각해보니 대장금(2003년 9월~2004년 3월)의 여파인 것 같습니다.

여느 축제의 먹거리 장터가 팽창하면 축제가 되고, 그게 국제급으로 발전하면 박람회(Exposition·엑스포)가 됩니다. 박람회는 일명 '엑스포'로 불리는데 크게 전문·종합·세계 박람회로 분류됩니다. 전문박람회는 특정 산업분야에 국한돼 평균 3~5일 열리는데 제조·유통업체와 바이어들만의 잔치이고 일반인들은 참가해도 별 소득이 없습니다. 서울인터내셔널 푸드쇼와 대구식품산업전 같은 게 대표적이죠. 종합박람회는 자국 산업을 홍보하기 위해 거국적으로 1~2주 열리는데 개별업체와 정부가 주도하고 바이어와 일반인이 동시에 구경할 수 있습니다. 세계엑스포는 과학·산업기술·문화예술이 총망라되죠. 방문객은 거의 일반인, 기간은 6개월 미만, 대표격은 대전엑스포입니다. 대구음식박람회는 전문박람회와 종합박람회를 섞어 놓은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음식축제를 보면 실제 속은 비어있는 데 외관만 자꾸 박람회로 '억지춘양식'으로 끌고가려고 합니다.

행사 내용에 외국 관련 프로그램만 구색 맞추기로 집어넣으면 박람회가 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의 폐단이 생길 수밖에 없죠. 급기야 '명칭만 박람회'로 전락한 축제까지 생겨나기도 합니다. 결국 '그들만의 박람회'가 되기 십상이죠.

시·도급 음식 박람회라고 하면 음식 축제와 구분되는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감탄보다 감동어린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보는 걸 넘어서 느끼도록 해야 하고, '축제 철학'이 척추처럼 자리잡고 있어야 행사가 약삭빠르고 얇팍해지지 않습니다. 음식 축제인데 우리 식당 주인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수동적입니다. 꼭 손님들만의 축제인 것 같습니다. 일부 주인은 관에서 지원금을 듬뿍 주면 그때 가서 참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습니다. 자연 행사 준비하는 공무원들이 죽을 맛입니다. 이번 대구음식박람회에서 주요 행사로 '전국 국 잔치'를 준비했는데 호남의 대표적 국인 나주 곰탕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바쁘다면서 참가를 고사했습니다. 식당 참여가 저조하면 자연 비음식적 행사가 불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어선 안되죠

음식축제는 한 지역 음식인들의 잔칫날입니다. 식당 주인들이 자기 일처럼 챙겨줘야 일이 됩니다. 일본의 축제, '마쓰리'에선 전 관계자들이 합심합니다. 우린 준비하는 사람 따로, 즐기는 사람 따로, 얼굴 내는 사람 따로, 잇속 챙기는 이가 엇박자를 칩니다. 그러니 역사성을 축적 못하는 행사로 전락할 수밖에요.

축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내공이 쌓여야 하고, 매년 그것만 기획하는 전임자도 있어야 합니다. 고도의 행사 운영을 위한 별도의 법인도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럼, 제대로 된 행사 경비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2007년 대구음식박람회 행사 총경비는 2억7천여만원입니다. 올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전주음식축제(11월9~13일)의 경우 총 4억9천만원입니다. 전주의 실무요원은 15명, 대구는 8명입니다. 전주는 행사 주관을 풍남문화법인에서 총괄합니다.

# 애뉴얼 드림 푸드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요즘 행사 내용은 전국이 붕어빵 스타일입니다. 전국을 커버하는 축제 전문 에이전시, 브랜드 마케팅 계의 큰손들이 판을 주무릅니다. 3일 정도 열릴 경우 거의 본·부대행사 합쳐 50~60가지 행사가 쏟아집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동원되는 꼭지도 비슷합니다. 올해가 2007년이니 2007인분의 먹거리 식의 각종 이벤트용 볼거리를 동원합니다. 많이 먹고, 빨리 먹기 대회도 하고, 칵테일 쇼도 벌이고, 외국의 다양한 먹거리를 소개하고, 요리왕 선발대회도 열고, 웰빙·퓨전요리 코너 등. 전국 유명 음식축제를 다녀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주최·주관·후원·협찬만 가리면 전국 음식 축제가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음식 축제의 본질은 음식입니다.

특정 지역에서 열리면 그 지역만이 가진 희소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농촌지역 음식축제는 특산품이 있어 포맷을 잡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직할시 수준의 음식축제는 행사의 초점을 매년 달리 기획한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솔직히 전국 식재료가 반나절만에 전국 어디론지 자유롭게 유통되기 때문에 자기 지역 음식을 고집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애뉴얼 드림 푸드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지역의 베테랑 조리사들이 대입 문제출제위원처럼 '올해의 음식(Annual food)'을 만드는 거죠. 그 음식은 행사 당일까지 X파일에 숨겨두고, D-데이 전국에서 엄선된 시식단에게 깜짝 공개하는 거죠. 거기서 그치지 말고 일본, 중국, 미국, 프랑스, 영국 등지로 '월드 시식 투어'도 나가는 겁니다. 마치 미스코리아가 '미의 사절'로 세계각국을 순방하는 것처럼. 동시에 그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 상업적 활용방법 등 관련 조리 노하우도 전국에 홍보하는 겁니다.

하여튼 대구음식관광박람회는 오는 15~18일 열립니다. 저는 그 전에 어제부터 시작 오는 4일까지 열리는 순창장류 축제와 9일부터 열리는 전주음식축제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현장 취재하고 돌아올게요.

[이춘호기자의 푸드블로그] 음식박람회 이야기(상)
2006년 EXCO(엑스코)서 열린 대구음식박람회 행사장 전경.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