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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 같은 와인, 다가서기 불안한가요?
와인은 '클래식 음반' 같습니다.
알기까지 혹독한 수련기가 필요하지만 일단 알면 중독되죠. 들어가는 문만 있고 나오는 문은 없습니다.
와인·파스타·커피.
이걸 다 꿰고 있다면 꽤 '교양지수'가 높다는 평가를 받을 겁니다. CEO가 이들 기본 용어에 버벅거리면 스타일 구기고 고급 사교계 진입도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 와인을 모르면 더욱 눈총을 받을 겁니다. "기본기 없는 사람"이란 핀잔도 듣겠죠. 그래서 요즘 비즈니스 차원에서 와인을 배우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와인을 모른다'는 건?
타닌(떫기), 어택(첫인상), 셀러(와인 저장고), 테이스팅(시음), 빈티지(수확한 해), 와이너리(와인 양조장), 에티켓(와인 라벨) 등 기본 용어를 모른다는 말도 될 겁니다. 용어에 대한 기본기를 익히고 와인 바와 숍에 갔을 때, 자기가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 지 말해야 됩니다. 이미 국가별 레드·화이트 와인 종류도 알고 있어야겠죠. 현재 대구에서 유통중인 와인 종류만 3천여종에 육박합니다. 생선 요리엔 화이트, 스테이크 등엔 레드 와인이 어울린다는 것, 아울러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 특히 치즈도 잘 챙겨야 합니다. 와인 정복 절차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암호' 같은 라벨도 독파해야죠. 포도 이름, 포도 산지와 양조장 이름, 생산국의 관리번호, 알코올 도수 등까지. 와인 역사는 물론 프랑스어까지 독파해야겠네요.
이제 시음 타임. 초보자는 병조차 못땁니다. 거의 코르크 마개를 후벼파다가 날샐 겁니다. 색소폰 입문자가 소리내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전용 병따개(소믈리에 나이프)를 줘도 일반인에겐 무용지물. 납으로 만든 호일을 벗겨내고 스크루를 코르크에 눌러 박아 세운뒤 돌립니다. 이때 스크루 끝이 45도 각도로 파고들어야 되는 데 무슨 말인지는 실습을 해봐야 압니다. 와인 잔 종류를 외우고, 와인 찌꺼기를 분리시켜주는 디켄터도 만납니다. 드디어 왼손을 등뒤에 붙이고 오른 손으로 병을 잡고 우아하게 부어줍니다. 와인 방울을 흘리면 파울입니다. 병을 자연스럽게 돌리면서 들어줍니다. 왜 헝겁으로 병을 감싸는 지 아시겠죠. 와인을 받을 때 잔을 들지마세요. 바로 마시지 않고 코·혀·눈·가슴으로 충분히 전희(?)를 합니다. 질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와인을 회전시킵니다. 맛을 본뒤 디테일한 소감을 말해야 합니다. 맛이 가볍다거나, 무겁다거나, 거름 냄새가 난다거나…. 여기에 해당되는 전문 용어도 알아두세요. 왜 와인은 셀러에 누워있어야죠. 코르크 마개가 건조하면 공기가 침투해 와인을 죽여버리기 때문이죠. 이 모든 걸 아는 이에게 '소믈리에(Sommelier·영어론 와인 캡틴, 혹은 와인 웨이터)란 영광된 칭호가 주어집니다. 솔직히 우린 소믈리에를 너무 쉽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오카리나 몇 달 배우고 전문 강사로 나서는 격이죠. 검증시스템이 너무 헐겁습니다. 대한소믈리에 협회가 있다지만 총체적 권위를 갖고 있진 못합니다. 국내 소믈리에는 아직 국제적 공인을 못받고 있습니다. 아직 대구에는 국제 라이선스를 가진 소믈리에는 없습니다. 국내 첫 소믈리에는 서한정씨(62), 그는 1976년 서울 프라자 호텔 소믈리에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초심자에게 위안이 되는 덕담을 줍니다.
"비싼 건 주로 희귀성 때문이지 맛 자체에 특별한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최고냐 아니냐는 언제나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려있다. 5천원짜리라도 자기 입맛에 맛으면 그게 세상 최고의 와인이다."
# 보졸레 누보 상식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이하 보누).
그걸 안 먹으면 어떻게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국내에선 2001~2002년부터 보누 붐이 일어났습니다. 현지서 5천~6천원짜리가 10만원대에 팔려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일부 마니아의 허영심을 업자들이 역이용한 거죠. 보누는 '올해 생산된 프랑스 보졸레 지방의 와인'. 된장처럼 묵은 맛은 없고 뭐랄까, 즉석에서 버무린 '겉절이 와인'이랄까요. 가격은 2만~4만원대이고 깊은 맛은 없습니다. 맛보다 분위기에 젖어보는 거죠. 마니아들은 호들갑스러운 보누 열풍을 경계합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남쪽 보졸레 지방의 남북 50㎞, 동서 15㎞가 전부 포도밭입니다. 거기에 약 3천600개의 포도원이 있습니다. 6주간 4만명이 보누를 만듭니다. 이 와인은 전세계적으로 매년 11월 셋째주 목요일 자정을 기해 일제히 출시됩니다. 고도의 글로벌 와인 마케팅 전략이죠. 보누는 50년까지만 해도 리옹의 값싼 레스토랑이나 파리의 작은 술집에서 매년 늦가을에 마시기 시작하는 값싼, 우리의 '막걸리' 같은 대중주였습니다. 와인 마케팅의 귀재 프랑크 뒤뵈프가 51년 11월13일 처음 누보 축제를 꾸몄습니다. 제조 과정도 여느 와인과 다릅니다. 올해는 30여종을 출시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조르주 뒤뵈프사의 보졸레 누보 제품을 수입·판매하는 롯데아사히주류를 비롯해 금양인터내셔날, 아영FBC, 신동와인 등의 업체들이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을 통해 보누 제품들을 판매합니다. 전세계 보누 판매 1위 브랜드인 조르주 뒤뵈프 보누(Georges Duboeuf Beaugolais Nouveau) 2007은 갈비·불고기·삼겹살 등에 잘 어울린답니다. 참, '한국판 보누'도 올해 등장했습니다. 지난 15일 국내 첫 와인 전문학과 격인 경남 마산대 국제소믈리에과에서 지난 9월 딴 햇포도로 만든'창성(昌盛·prosperite)'150병을 생산했지만 제조 면허가 없어 교내 시음용으로 활용했답니다. 상주시 모동면 상판리 포도특구에서 농민 김재성씨가 수확한 토종 포도로 빚었다네요.
◇ 취재협조=인비노 수성점(053-767-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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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산 보졸레 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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