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월동 채소를 찾아서

  • 입력 2008-01-18   |  발행일 2008-01-18 제37면   |  수정 2008-01-18
초록빛 머금은 보릿국은 '迎春湯' (봄맞이 국)
# 보릿국 먹어봤습니까?
[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월동 채소를 찾아서

도시에서는 계절을 실감하기 힘듭니다.

특히 아스팔트 길에선 더더욱 그렇죠. 가로수 잎의 색감을 보면서 겨우 계절을 짐작할 뿐입니다. 계절을 만나려면 길 밖으로 걸어나가야 합니다.

제 집 근처에 상인동 월광 수변공원이 있습니다. 거기 못둑 옆 텃밭에서 파릇하게 인사하는 월동 채소를 봤습니다. 이번주 푸드 블로그용 사진을 위해 삼동초(일명 봄동·떡배추) 한 포기를 찾아 디지털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습니다. 노란 촉만 내민 움파, 시금치, 적상추 등이 자라고 있습니다. 봄이면 유채꽃처럼 노랑 꽃을 피우는 삼동초는 꼭 큼지막한 질경이 같습니다.

# 지금은 겨울, 하지만 봄은 벌써 우리곁에…

지금은 겨울.

아직 지역엔 이렇다 할만한 한파가 찾아들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아열대화 징후인지도 모릅니다. 예전 어른들은 "겨울엔 코털이 얼 정도로 추워야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했습니다. 최소 영하 10℃ 이하라야 겨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올해도 '대한민국 겨울 속 봄 1번지'로 불리는 제주시 북제주군 한림읍 협재리 한림공원의 꽃 지킴이 김대실 상무(46)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역시 겨울꽃인 수선화가 가장 빠르게 지난해 12월15일쯤 꽃을 피웠습니다. 눈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복수초는 지난 1월초, 매화는 새해 첫날쯤 망울을 터트렸습니다. 아직 유채꽃은 일러 피지 않았습니다.

육지에 겨울이 오면 제주도의 산하는 더욱 푸릇해집니다.

거기가면 대나무·소나무 이상으로 푸릇함을 과시하는 월동 채소가 푸짐합니다. 제주농협지역본부 유통총괄팀 전용직 차장(46)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주도 농부들은 육지 농부와 달리 요즘 엄청 바쁩니다. 육지인들이 먹을 다양한 채소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당근, 감자, 무, 양배추, 브로콜리, 쪽파 등이 육지로 공수됩니다. 특히 무가 가장 많이 팔려나갑니다. 이들은 오는 3~4월 육지 채소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전까지 특수를 누릴 겁니다. 가격이 비싼 쪽파와 브로콜리는 항공기로 수송되고 나머지는 배편으로 옮겨지는데 현지에서 대구 소비자한테 오는 데 평균 48시간 걸립니다.

지난해 이맘때 소개된 '포항초'.

몇몇 독자는 포항초가 시금치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선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자랑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포항초 성수기입니다. 특히 흥해 농협은 포항초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칠포 해수욕장 인근 곡강마을은 포항초 수확으로 눈코 뜰새없이 바쁩니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선 시금치를 '섬초'라고 부르죠.

지금쯤 남녘의 보리도 겨울속 봄을 머금고 있습니다.

포항시 남구 대보면 호미곶 구만리 해안 구릉지는 지역민도 잘 모르는 전국적 보리밭입니다. 물론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12만평의 학원 농장과 전남 완도항에서 배편으로 40분 정도 걸리는 청산도 보리밭도 스타급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경상도 보리 산지에선 이상하게 보릿국이 없는데 전남 나주, 목포, 신안 등 홍어 산지 보리밭 동네에선 춘궁기 먹거리로 사랑받았답니다. 전남 해안에선 이맘때 여린 보리싹과 홍어애(내장)를 함께 넣고 끓인 '홍어애 보릿국'이 절창입니다. 국물 맛? 된장과 암모니아가 섞인 묘한 냄새가 일품입니다.

홍어애 보릿국은 겨울철 남도의 별미입니다. 타 지방에서는 어린 보리싹과 된장 정도만 넣고 국을 끓였으나 전남 해안에서는 홍어애를 넣는 게 독특합니다. 흑산도 홍어가 대량 유통되는 곳 중 하나인 나주에서 가장 많은 홍어를 팔고 있는 37년 역사의 나주시 영산동 홍어1번지(사장 안국현)는 자체 보리밭을 확보, 사계절 보릿국을 팔고 있습니다. 국내산 홍어를 다량 확보하기 때문에 국을 팔 수 있다고 하네요. 한 그릇에 5천원.

끓이고 싶은 분들을 위해 간단한 레시피를 알려 드릴게요.

준비할 재료는 어린 보리싹, 된장, 홍어애, 멸치, 다진 마늘, 다시마 등입니다. 어린 보리싹을 찬물에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 놓고, 그 다음은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국물을 만듭니다. 뜨거운 국물에 된장을 풀어 보리싹을 넣어 끓이다가 거기에 홍어애와 다진 마늘을 넣고 푹 끓여 간을 맞추면 됩니다. 나주 홍어1번지에서는 육수를 뺄 때 홍어 뼈를 사용합니다.

대구에서도 홍어애 보릿국을 맛볼 수 있는 데를 수소문 해봤습니다. 직접 나주로 가서 조리법을 배워온 김인정씨가 있습니다. 대구 홍어1번지(053-941-5424)를 운영하는 그녀는 나주에 직접 가서 국 요리법을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선 주메뉴에 포함시키지 않고 비싼 홍어회를 드시는 단골을 위해 드문드문 내놓는다고 합니다.

# 월동 배추의 메카 해남

요즘 '남도답사 1번지' 전남 해남에 가면 봄동산처럼 보이는 매머드 월동 해남 배추단지를 볼 수 있습니다.

산이·화원·문내·황산면은 온통 배추밭입니다. 여기서 국내 배추 생산량의 75%가 생산된다고 합니다. 현재 900여 농가는 겨울배추 생산자단체 협의회를 중심으로 전국 배춧값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민첩하게 움직입니다. 해남 배추는 여름 강원도 고랭지 배추 출하가 끝나갈 무렵 본격 가동됩니다. 중부지방에 한파가 오면 올수록 더 몸값이 올라가죠. 얼마전 배추값이 폭등했을 때 화원농협의 절임배추가 금값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일손도 귀해 전국의 일꾼들이 꼭 탄광 특수를 노리듯 여기로 흘러듭니다. 12월~다음 해 3월까지 그룹으로 머무는 이도 있습니다. 배추단지를 찾아 이동하는 '인간 철새'들이죠. 해남 배추 특수가 끝나면 다시 충남 서산~강원도 고랭지 밭으로 일하러 북상합니다. 많이 벌 때는 하루 18만원 이상 번다고 합니다.

[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월동 채소를 찾아서
포항 구만리 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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