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흑산도 홍어 이야기

  • 입력 2008-01-25   |  발행일 2008-01-25 제37면   |  수정 2008-01-25
홍어 맛에도 '起承轉結'이 있습니다
[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흑산도 홍어 이야기
대구에 첫 홍어를 선보인 새아씨방 이현숙 사장.

# 홍어에 대한 몇 가지 단상

홍어(洪魚).

물속에선 '연(蓮)', 하늘에선 '연(鳶)'으로 불리죠.

잘 삭힌 홍어 맛, '기승전결(起承轉結)'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입에 들어가기 전엔 절대 냄새를 피우지 않습니다. 마니아들은 접시에서부터 퀴퀴한 냄새를 피우는 홍어를 '마이너급'으로 분류합니다. 더 독한 게 좋다는 건 낭설이죠. 연갈색과 붉은색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빛깔로 누워 있는 홍어회. 쿠크다스 비스킷 한 개 크기의 홍어 한 점 입에 넣고 씹습니다. 과메기처럼 꾸덕하고 쫄깃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육포처럼 경직되어선 곤란하죠. 10여회 씹다가 혓바닥 위로 올려줍니다. 이때부터 '박하빛 바람'이 일어섭니다. 숨을 들이켭니다. 코의 점막에서 찬바람이 펄럭거립니다. 순간, 한여름 밀폐된 재래식 변소 안에 갇힌 듯 합니다. pH9에 육박합니다. 눈도 감기고 눈물샘도 터집니다. 이때 탁주 한 모금을 마셔줍니다. 탁주가 아려질대로 아려진 혓바닥을 편하게 해주는 '중화제'구실을 합니다. 그래요, 홍어가 술 구실을 하고 탁주가 안주로 밀려납니다. 아린 기운 탓에 묵은지도 평상시보다 더 달콤해집니다. 일진광풍이 지나간 침샘에서 귀뚜라미 소리처럼 청아한 침이 생수처럼 돋아납니다. 이 대목이 '홍어 즐기기의 백미'입니다. 명품 홍어, 그 뒤끝은 첫 대목과 달리 엄청 감미롭죠. 거기까지 가려면 최소 5년 이상 홍어에 사로잡혀 있어야 된다네요. 홍어가 불기운을 만나면 더 역해집니다. 찜은 회보다 더 독하지만 냄새의 입체감은 무너집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초기, 아들 홍일씨를 통해 홍어를 선물로 내놓아 그로 인해 전국에 홍어붐이 일었죠. 지난 23일 오후 4시, 홍어잡이 배 한성호 이상수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속설 두 가지를 바로 잡아줬습니다. '홍어는 일부일처 성향이 있어 암컷이 주낙에 걸리면 예외없이 수컷도 딸려 올라온다'는 설에 대해 "그건 사실이 아니다. 한 마리씩 걸려 온다"고 말했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의 현주소도 알려줬습니다. "요즘은 무게로 등급을 나누지만 예전에는 암수로 나눠 경매가 됐다. 수컷 두 마리 가격이 암컷 한 마리 값이었다. 당연히 수컷이 잡히면 암컷으로 둔갑시키려고 수컷의 양경 2개를 절단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 잡히기는 흑산도, 팔리는 데는 나주 영산포

지난 21일 오전 11시 흑산도 예리항 수협 공판장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평일보다 늦게 경매가 열렸습니다. 출어했던 9척 어선이 모두 들어왔습니다. 모두 900마리가 잡혔습니다. 8㎏ 이상 1번치 홍어 경매가는 40만원. 몇년전 116만원까지 가격이 치솟기도 했습니다. 흑산도 수협 경매사는 모두 18명. 홍어잡이배는 모두 9척, 이 중 2척(한성·성해호)은 홍도에서 출어합니다.

예리항에서 출발할 경우 1시간30분~3시간 나가야 조업현장에 도착합니다. 현장 수심은 50~100m, 미끼와 미늘이 없는 7자형 낚싯줄이 달린 평균 190여m의 주낙 한바퀴를 30~40개 뿌려두고 5~7일 기다렸다가 걷어냅니다. 요즘은 중국 어선이 싹쓸이해 수입이 말이 아니라네요.

홍어잡이에 평생을 건 흑산도 주민 김영창씨(72), 그는 1974년 홍어잡이 배를 구입했습니다. 10번 중매인으로 활동했고 88년부터 '성우정'이란 홍어식당을 남도장이란 여관과 함께 꾸려갔습니다. 이 식당은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도 소개됐죠. 현재 홍도에는 홍어집이 없고 흑산도에는 10군데가 넘습니다. 흑산도 홍어 경매는 예리항에서만 열립니다. 홍어는 연중 잡히지만 해양수산부는 2006년 7월 매년 4~6월을 금어기로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회유성 어종인 홍어의 생태에 대해선 그다지 알려진 게 없습니다. 흑산도 근해에서 알을 낳은뒤 어디갔다가 다시 오는 지 모릅니다. 현재 인천 서해수산연구소에서 홍어 연구 용역 보고서를 작성중입니다.

일제 때만 해도 전남 나주 영산포 상권은 대단했습니다.

굴비의 법성포, 대게의 영덕급이었죠. 잡힌 홍어는 영산포에 와야 쌀 등과 물물교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에선 처음으로 영산강 하구에 등대까지 세워졌어요. 날 홍어는 아무런 냄새가 없습니다. 기술자가 10~30일 밀폐된 항아리에서 삭혀야 암모니아 냄새가 흐릅니다. 예전엔 흑산도에선 삭힌 건 없고 모두 날것만 즐겼습니다.

그럼 어떻게 나주 영산포가 '삭힘 홍어의 고향'이 됐을까요. 냉동 시절이 없던 시절 흑산도 어민들은 돛단배에 홍어를 실어 영산포로 노저어 갔습니다. 90㎞가 넘는 거리니 며칠이 걸렸겠죠. 자연스럽게 발효가 됐고 우연히 발견된 아린 맛에 사람들은 반해버립니다. 나중엔 잔칫상에선 없어선 안될 호남의 대표 먹거리가 되죠. 목포와 나주는 국내 홍어의 양대 산맥. 목포에선 금메달 식당(사장 박정숙)이 유명한데 국내산만 취급해 한 접시 10만원 이상입니다. 물론 나주는 목포보다 더 삭힌 게 선호됩니다. 이제 흑산도와 나주 영산포에서도 홍어 축제가 열립니다. 영산포엔 40여개 상점이 홍어거리를 형성시켰습니다. 이중 홍어1번지가 제일 파워풀하고 대구의 9개 업소와도 거래합니다.

# 대구의 홍어문화 현주소

대구에서 가장 먼저 홍어를 보급한 사람은 누굴까요.

남구 대명동 대구가톨릭병원 남쪽 홍어 전문점 새아씨방(053-651-6291)의 사장 이현숙씨(53)입니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란 그녀는 일찍 호남 음식에 익숙했습니다. 이씨의 이모가 87년 남구 대명9동에서 수미정이란 갈비집을 운영할 때 대구로 와서 간여했습니다. 89년 대구 구이붐을 타고 대명10동에 '아씨방'이란 구이집을 열었습니다. 고향 노모가 보내주는 홍어, 키조개, 새조개, 굴비, 갓김치, 매생이 등 남도 먹거리를 소개했습니다. 94년 현재 자리에 새아씨방을 열고 홍어전문점으로 진용을 바꿉니다.

90년대초만 해도 홍어에 대한 지역의 반응은 너무 부정적이었습니다. 작고한 가톨릭병원 이정길 원장의 격려에 힘입어 숱한 시행착오 끝에 홍어 뿌리내리기에 성공합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전남여고 출신인 부인 윤정희씨도 이 집 단골이죠. 이밖에 성악가 엄정행, 환경운동가 정학씨,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재용 이사장 등도 이 집을 고수합니다.

후발 주자이지만 홍어에 청춘을 건 '홍어 아저씨'가 있습니다. 2002년 6월 문을 연 달서구 도원동 홍어와 탁주(636-9982)란 체인점에서 독립한 김영승씨(41)입니다. 그는 숱한 실패를 거듭한 결과 온도와 공기, 혈액, 수분 등이 홍어 발효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흑미 탁주와 묵은지까지 직접 담그는 그의 '홍어 삭힘론'은 이렇습니다.

"홍어와 상어는 콩팥이 없다. 오줌도 밖으로 배출하지 않고 체내에서 해결한다. 그 요소가 숙성 과정에 암모니아로 변한다. 마니아들은 자꾸 더 독한 걸 찾는데 너무 독한 게 반드시 좋은 게 아니다. 숙성을 오래한다고 해서 더 독해지는 것도 아니다. 자칫 너무 짜지거나 삭혀지지도 않고 물러져버린다."

이밖에 수성구 월드컵경기장에서 경산 방향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전라도 잔치집 밥상(741-7478) 사장 이양수씨는 전남 강진 출신으로 직접 단지에서 홍어를 묵힙니다. 수성구 그랜드호텔 뒷골목 녹수(744-6120)도 단골층을 형성했습니다.

[이춘호기자의 푸드 블로그] 흑산도 홍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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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홍어잡이 배. 보통 흑산도에서 2시간 남짓 나가서 조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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